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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려 걷는 마을… 가양동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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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단 하나뿐인 향교가 있는 강서구 가양동 일대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양천향교 외에도 궁산과 소악루, 겸재정선미술관, 허준박물관 등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흔적과 문화적 명소들이 곳곳에 있다. 마을 골목길에 숨은 듯 한발 물러나 있어 여간해선 보이질 않는 이들 명소를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양천향교 인근에 있는 `하마비터`에 세워진 병풍모양의 상징조형물 ⓒ박분

양천향교 인근에 있는 `하마비터`에 세워진 병풍모양의 상징조형물

양천향교가 위치한 마을 진입로 부근 양천초등학교 앞에는 놓치기 쉬운 표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옛날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던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하마비터’ 표석이다. 표석에는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하마비는 태종 13년(1413년)에 ‘종묘나 대궐 앞에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공경의 뜻으로 세웠던 비석이다.

그런데 종묘나 대궐이 없는 이 지역에 하마비를 세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주변에 있었던 교육기관인 양천향교에 대한 공경심의 표시로 추측하고 있다. 최근 이 하마비터에 너비 4.6m, 높이 2.2m 크기의 하마비 이야기를 담은 병풍 모양의 조형물이 세워져 다시 조명받고 있다. 옛날 임금님도 말에서 내려 걷던 길이었던 만큼 ‘하마비터’를 지나며 절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고 한다.

겸재정선이 즐겨 그린 한강변의 산수화를 형상화한 입체벽화 ⓒ박분

겸재정선이 즐겨 그린 한강변의 산수화를 형상화한 입체벽화

양천초등학교 담장 따라 50m 이어지는 길에는 가로수길 벽화가 있다. 겸재정선이 즐겨 그린 한강변의 산수화를 형상화한 입체벽화다. 이 도로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겸재정선미술관과 겸재가 즐겨 찾았던 소악루가 있음을 알려주듯 이 일대에는 겸재의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삼각지산수>, <서울풍경> 등의 공공미술작품들이 있어 마을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성주우물터 바로 위 둔덕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가을 햇빛을 받고 있다. 노랗게 익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아름드리 이 은행나무 또한 예술의 향이 짙은 이 마을의 역사와 연관이 깊다. 한때 개발 바람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마을 어르신과 주민들이 굳건히 지켜냈다. 현재 나이 440살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는 겸재의 진경산수화에도 등장한 나무라고 하니 소중함에 다시 올려다보게 된다. ‘강서 100경’에 포함된 ‘성주우물 은행나무’를 귀하게 받들어 모시는 마음에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3?4월중 좋은 날을 택해 ‘성주우물 은행나무제’를 올리고 있다.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고 전해 내려오는 성주우물터의 모습  ⓒ박분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고 전해 내려오는 성주우물터의 모습

방향을 바꿔 양천향교역 3번 출구에서 한강 방향으로 몇 걸음 걷다 오른편의 작은 공원으로 들어섰다. 옛날부터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빌었다는 나무 한 그루와 우물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성주우물은 어떤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고 전해져 온다. 당시 마을의 수령을 성주라 부른 데서 연유해 우물 또한 ‘성주우물’로 높여 불렀다고 한다.

양천향교를 향해 마을 길을 3분 정도 걷다 보면, 골목이 나뉘는 길모퉁이에서 ‘양천현아지’라고 새긴 또 다른 표석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양천현아의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이다.

양천현(陽川縣)은 지금의 강서구 일대에 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고종 때까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지만, 표석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을의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양천향교가 가까워질수록 아늑한 분위기의 마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낡고 허름한 주택과 식당, 점포가 늘어선 골목길은 꾸미지 않아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주택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며 옥상에 내걸린 빨래가 그렇고 트럭에 좌판을 연 튀밥 가게와 과일가게도 한몫한다. 어딘가에서 봤던 익숙한 풍경들이 잘 동화돼 마을 산책길을 편안하게 이끌었다.

전통방식으로 국수를 만드는 `옛날 국수집`의 주인 임유섭(70)씨 ⓒ박분

전통방식으로 국수를 만드는 `옛날 국수집`의 주인 임유섭(70)씨

양천향교를 몇 발짝 앞둔 좁다란 골목길 너머 허름한 단층집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빠끔 열린 대문 사이로 들여다보면 오래전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옛 방식대로 국수를 뽑아 말리는 광경이다. 마당가 국수 걸이에 매달린 150㎝ 길이의 국숫발이 장관을 연출한다. 가을 햇빛에 내걸린 국숫발은 마치 흰 광목천을 드리운 듯하다. 바람과 햇볕 아래 국수를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산책길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옛날 국수집’은 역사의 향이 스민 이 골목길과도 닮았다.

그 골목 끝에 양천향교가 있다. 향교 앞에는 홍살문이 우뚝 서 있다. 양 기둥 사이에 연결된 화살 모양의 나무는 붉은색과 화살로 나쁜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태종 12년(1411)에 창건돼 지방 향리들의 자제를 교육하고,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담당했던 양천향교는 1981년 복원됐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라는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0년에 서울시 문화재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다.

서당이 백성이 세운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국립학교에 해당한다. 양천향교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해 수시로 해설을 곁들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홍살문이 보이는 양천향교 전경  ⓒ박분

홍살문이 보이는 양천향교 전경

양천향교를 지나 길은 ‘궁산’으로 이어진다. 궁산으로 가기 전 근방에 있는 겸재정선미술관에 들러 겸재 그림 속 양천현아와 소악루 모습을 살펴보면 겸재정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화풍인 관념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정선은 1740년 이곳에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뒤 5년간 봉직하면서 한강 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폭에 담아냈다. 미술관 야외 광장에는 겸재 진경산수 세라믹판 벽화가 전시돼 있다.

이 벽화는 어린이날을 맞아 작년과 올해 진행했던 ‘겸재정선 전국청소년 사생대회’와 ‘겸재정선 따라 하기’의 수상작품 300여 점을 세라믹판 그림벽화로 제작한 것이다. 미술관 뒤편으로 궁산 산책로가 이어진다.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저 멀리 가양대교와 월드컵공원이 보인다. ⓒ박분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저 멀리 가양대교와 월드컵공원이 보인다.

75.8m의 나지막한 궁산은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궁산에서 소악루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를 본떠 지었다는 ‘소악루’는 한강변의 뛰어난 절경으로 명사들의 시화와 풍류의 장이었다. 탁 트인 궁산 정상은 서울시 우수 조망 명소로 선정된 곳이다. 정상에 서면 행주산성과 가양대교 북단, 월드컵공원이 보이고 멀리 북한산의 수려한 산세까지 눈에 들어온다. 파란 가을 하늘을 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소나무군락 또한 궁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진한 가을 풍경이다.

양천현의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가양동 골목길 산책은 한나절이면 넉넉히 즐길 수 있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면 어김없이 출출해지는데 전라도식 추어탕 집과 시원한 황태국 집 등 양천향교 부근에는 동네 골목길에 접한 푸근한 식당들이 있어 어느 곳을 들어가도 따뜻한 한 끼 식사 할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 양천향교 일대 역사와 문화 향기가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 양천향교 관련 정보

○ 주소 : 서울 강서구 양천로47나길 53

○ 문의전화 : 02-2658-9988

○ 홈페이지 : www.hyanggy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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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려 걷는 마을… 가양동 한바퀴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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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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