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나의 서울] 오늘의 서울은 무슨 색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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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색깔을 입은 서울광장 화분.


나는 서울을 좋아한다. 이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간혹 버벅대다가도 어디서든 불쑥불쑥 “어딜 가도 서울만 한 도시가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 태어나 고 자란 도시가 서울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뱉어낸다. 서울은 정말 멋있는 도시니까.

제대로 된 정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서울의 보통 집에서 수년째 가드너로 살면서 나는 늘 넓은 마당과 나만의 온실을 가지게 될 날을 꿈꾼다. 서울을 벗어나면 가능한 일이 될 텐데 도저히 서울이 주는 안락함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이렇게 좋아하는 서울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건 바로 일관된 도시 조경에서 오는 지루함이다. 길가의 가로수 중 반 이상은 은행나무고, 어쩌다 포플러나무나 단풍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을 뿐인 이 도시의 식물들이 조금 단조롭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암스테르담, 도쿄, 런던, 파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은 그 도시에 꼭 어울리는 도시 조경을 가지고 있다. 먼저 암스테르담은 튤립으로 유명하다. 매해 봄마다 거대한튤립 축제를 열며, 거리 마켓에서 튤립 구근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집집마다 창문 앞에 튤립을 피워둘 정도로 튤립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도쿄 사람들은 작은 꽃과 작은 이파리의 식물을 믹스 매치해 화단에 심는 것을 좋아하고, 런던의 식물들은 사람의 손이 닿은 듯 안 닿은 듯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모양새로 자라난다.



여행지에서 예쁜 도시 조경을 만날 때마다 나의 도시에도 이렇게 근사한 조경이 펼쳐지기를 꿈꿔왔는데, 드디어 서울의 조경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년 여름 홍대입구역 중앙 차선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바질이었다. 바질이라니! 버스 정류장에 바질이 살고 있다니!

피자나 파스타를 먹을 때 곁들이는 허브인 바질이 나팔꽃과 함께 8차선 도로 한중간에서 자라고 있었다. 바질은 건강하게 특유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나팔꽃과의 어울림이나 특유의 싱그러운 향기가 기분 좋아서 한참 구경하느라 내가 탈 버스를 몇 대 놓치고 나서야 버스에 올랐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홍대입구역의 버스 정류장뿐만 아니라 강서구, 종로구, 영등포구의 버스 정류장에도 모두 바질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평소 심어두던 식물과 조금 다른 식물이 버스 정류장 조경에 쓰이고, 오가며그 식물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엉뚱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는 상황이 정말 즐겁다.

올해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버스 정류장에 어떤 식물들이 피고 질지 궁금해진다. 비단 버스 정류장뿐만 아니다. 여러 공원의 조경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드디어 서울에서도 식물들의 습성을 따져 높낮이를 정하고, 보기 좋은 색깔을고민해가며 꽃을 심는 식의 조경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껏 밋밋하던 서울의 화단이 모두 캐릭터를 가지게 되고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서울의 공원들 중 접근성과 작은 온실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선유도공원을 매우 좋아한다. 선유도공원은 환경 재생생태공원인 만큼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부터 침엽수, 벚나 무, 온실에 살고 있는 각종 열대식물까지 만날 수 있어 소소하게 식물을 구경하며 산책하기에 매우 알찬 구성을 자랑한다.

조금 늦은 봄꽃 구경을 위해 공원을 찾았던 며칠 전 서울에서 난생처음 보는 종류의 조경에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유도공원 초입에 나란히 자리한 조그만 화단에 수많은 종류의 식물을 믹스 매치해 심어두었는데, 그 다채로움이 너무 아름다워서 화단 하나를 지나는 데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얀 디모르포테카꽃 옆에는 진분홍색 제라늄이 살고 있고, 그 뒤에는 진한 보라색의 프렌치 라벤더와 노랗고 빨간 바나나 크로톤, 하늘색 수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냥 나팔꽃만 수북하게 있거나 데이지 한 종류만 잔뜩 살고 있는게 아니었다. 지름이 1m쯤 될 법한 작은 화단은 각각의 테마와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색과 형태와 질감의 식물을 굵직하고 화려하게 배치하는 건 이제껏 한국의 공공 조경에서는 정말 흔치 않은 방식이었다. 선유도공원의 조경을 담당하시는 분에 대한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그분에게 “대단하십니다”하고 존경의 박수를 짝짝짝 쳐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드디어 서울에서도 식물들의 습성을 따져 높낮이를 정하고, 보기 좋은 색깔을 고민해가며 꽃을 심는 식의 조경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껏 밋밋하던 서울의 화단이 모두 캐릭터를 가지게 되고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서울 사람들 의 시야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 다른 식물보다 추위를 조금 더 견딘다는 이유로 단색의 팬지꽃만 주르르 심어놓고 말던 시절은 지나갔다. 조금씩 더 다채로워지고 용감해지는 중인 서울의 조경이 앞으로 얼마큼 풍부한 색깔을 입게 될지 정말 기대된다.

임이랑

임이랑
밴드 ‘디어클라우드’ 멤버이자 식물 애호가.지난 3월 <아무튼, 식물>을 출간했다.

임이랑사진장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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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오늘의 서울은 무슨 색인가요?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9-04-30
관리번호 D000003617400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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