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④]실과 바늘로 이어져 꽃으로 피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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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 산업은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 기반 산업이었다.

그 당시 조수로 일을 시작한 봉제사는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고,
반짝반짝하던 새 가위는 세월의 손때를 입고 아직도 작업 중이다.



작곡가 박춘석의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고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 위를 걷는다. 관객은 숨을 죽인 채 감탄스러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본다. 경쾌한 쇼에 이어 2부에서는 바이올린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우아하게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그해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한 조미령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등장하자 관객의 박수와 환호가 쇼장에 울려퍼진다.

1956년 11월 29일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에서 열린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 현장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국제복장학원(국제패션디자인학원 전신)을 설립해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를 배출한 최경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패션 문화를 이끌어온 1세대 패션 디자이너다.

이날 패션쇼는 티켓도 없이 온 사람들이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런데 혹시 여배우를 보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는지…. 전문 패션모델이 따로 없었던 시절이라 당시 패션쇼에는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모델로 등장했고, 관객 역시 옷보다는 미인을 구경하는 목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문화는 살아 있었고, 유행도 있었다. 특히 전쟁으로 구제품이 넘쳐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양장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전쟁 통에 부산, 대구로 피란갔던 디자이너들이 상경해 명동을 중심으로 양장점을 열었는데 최은희·김지미·노경희·윤복희·김시스터즈 같은 연예인이 양장점의 단골이 되면서 일반인 단골도 늘어났다.

패션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제복장학원을 통해 우수한 인 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대표적 디자이너가 진태옥, 앙드레김, 이신우, 박항치, 이상봉 등으로 이들에 의해 우리나라 패션 산업이 고급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에 타계한 앙드레 김은 세계 곳곳에 한국 패션의 위상을 알린 민간외교의 선봉장이자, 개인의 부와 명예보다는 패션인으로서 자존감과 사명감으로 한국 패션의 격을 드높이며 대한민국 패션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노라노패션쇼

1956년 소공동 반도호텔에서 열린 노라노 패션쇼. 전시회가 아닌 쇼 성격을 띤 패션쇼로 우리나라 최초다.

경찰, 대나무 자 들고 무릎 위 20cm 단속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화, 드라마, 가요, 팝송 등 대중문화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맘보바지와 미니스커트.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고 나온 맘보바지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고, 미국에서 귀국한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니스커트 열풍은 런던에서 시작했다. 비틀스가 기득권으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노래로 부르짖을 때 패션 디자이너메리 퀀트는 미니스커트로 패션 혁명을 주도했다. 이 즐겁고 섹시한 옷이 불과 몇 개월 만에 퀀트의 부티크에서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고, 3년 뒤인 1967년 대한민국에 상륙해 가리는 것이 미덕이던 기성세대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미니스커트는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고, 급기야 정부는 단속령까지 내렸다. 대나무 자를 들고 다니며 여자들의 치맛자락을 단속하는 일이 경찰에게 새로운 업무로 부여됐고, 무릎 위 20cm 이상 노출되면 경범죄로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퇴폐풍조 근절이라는 명목도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펼쳐지면서 일명 ‘몸빼’라고 부르는 작업복을 권장하던 시절이니 권력가의 눈에 미니스커트는 결코 달가운 복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대적 단속으로 치마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바지 길이도 길어져 1970년대 들어 판탈롱(아랫부분이 나팔 모양으로 넓은 바지)이 유행했다. 그리고 생맥주와 통기타, 청바지, 장발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가 형성되었다. 실용성에 패션까지 더해진 데님 패션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였고, 이후에도 계속 유행했지만 1970년대에 가장 폭발적으로 사랑받았다. 덕분에 캐주얼웨어 붐이 일었고 기성복시장도 확장되었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자율화가 두드러져 패션의 다양화가 나타났다.

치마단속

무릎 위 20cm 여부를 측정하는 모습

서태지와 아이들, 힙합 스타일로 패션까지 점령

1983년 교복 자율화를 기점으로 청소년 패션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부티크와 살롱에서 벗어나 기성복 시대가 열렸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등 연이은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도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스포츠웨어가 일상복으로 유행을 이끈 것. 그러나 해외 유명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비싼 가격 때문에 누구나 입을 수없었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나이스’, ‘아이도스’로 로망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 기발한 짝퉁들은 국격을 떨어뜨린다 고 비판을 받긴 했으나, 지갑 얇은 부모들에게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1990년대에는 감각과 개성을 중시한 패션 문화가 형성되었다. 연예인이 패션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도 이 무렵. 서태지와 아이들의 힙합 스타일 등이 유행을 이끌었다. 패션 변천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패션 산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해 1980~1990년대 호황을 누렸다. 이는 섬유 봉제 산업 발전과 맞물려 있다. 구로공단을 비롯한 공단 지역은 물론 남대문, 동대문 일대에서는 하루 24시간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의류 도매시장이던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전국에서 몰려든 의류 상인들로 새벽이면 북새통을 이루었다.

섬유봉제산업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공업이던 면방직이 섬유 봉제 산업으로 확장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물론, 패션 발전에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봉제 산업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담다

지난 4월 11일 개관한 봉제역사관 ‘이음피움’을 둘러보기 위해 창신동을 찾았다. 창신동은 우리나라 봉제 산업의 1번지이자 서울 패션 산업의 메카인 동대문의 배후 생산지로 아직도 3,000여 곳의 봉제 공장이 성업 중이다.

좁은 언덕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단층 주택이나 다세대주택, 건물 지하에 2~3명이 일하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모두 봉제의 달인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어낸다. 아침에 동대문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패턴, 재단, 미싱 공정을 거쳐 주름 잡기, 왁끼(옆선) 작업, 구찌(입술 주머니) 작업 등을 한다. 이렇게 1차 가공한 옷을 시야게(마무리) 작업장으로 보내 다림질, 단추 달기 등 마무리 과정을 거쳐 최종 완성해 새벽에 오토바이에 싣고 동대문 도매시장으로 납품한다. 한 동네 주민의 말마따나 창신동의 하루는 아침 재봉틀 소리로 시작해 새벽 오토바이 소리로 끝난다.

서울시는 이곳에 봉제역사관 이음피움을 개관했다. 장인 정신과 손재주가 우수한 봉제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산업화 시대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이자 서울 패션 산업의 든든한 조력자인 봉제 산업의 역사와 현재를 조명하기 위해서다. 창신동 골목 끝자락, 한양도성 낙산 구간 인근에 위치한 이음피움은 봉제마스터기념관, 봉제역사관, 단추가게, 봉제 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했다. 패션 화보, 신문 기사, 봉제 마스터 등을 통해 우리나라 섬유 봉제 산업과 창신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봉제 체험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옷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봉제 체험 프로그램은 5월 12일 홈페이지(iumpium.com)를 오픈하면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받는다. 이음피움이라는 이름은 ‘이음’과 ‘피움’의 합성어로 실과 바늘이 천을 이어서 옷으로 탄생하듯 ‘서로를 잇는다’는 뜻과 꽃이 피어나듯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창신동 봉제공장

좁은 골목을 따라 분업화된 봉제 공장들이 들어선 창신동

패션 제조 산업으로 봉제 산업 부활 신호탄

‘왁끼’, ‘구찌’, ‘시야게’, ‘호시’ 등 봉제 전문 용어가 적힌 간판을 구경하며 고갯길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니 저 멀리 대형 의류 상가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창신동에서 만든 옷들을 파는 곳이다. 한때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남싸롱’, ‘동부틱’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새벽이면 전국에서 올라온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봉제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값싼 중국 제품이 밀려들면서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다 1990년대 말 ‘두타’, ‘밀리오레’ 같은 24시간 소매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패션 타운’으로 부활했다. 한류 열풍으로 글로벌 패션 관광 명소가 되면서 외국 관광객의 필수 쇼핑 코스가 되었고, 2~3일이면 납품 가능한 초스피드 생산 시스템 덕분에 국내외 의류 상인들도 동대문 패션 타운을 계속 찾고 있다. 초스피드 생산 시스템의 힘은 바로 창신동 같은 밀집 봉제 공장에서 나온다.

서울의 봉제 산업은 패션과 융합한 패션 제조업으로 탈바꿈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동대문패션관광특구’를 중심으로 디자인과 제작, 유통, 판매까지 결합한 패션 제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패턴과 재단, 꼼꼼한 바느질 등 고급 봉제 기술은 패션 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한다. 봉제 달인의 재봉틀에서 완성한 메이드 인 서울 옷들이 세계 패션 시장에서 각광받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동대문 패션관광특구

우리나라 패션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동대문 패션관광특구. 이 곳을 중심으로 봉제산업의 활로가 모색되고 있다.

봉제의 역사

역사 1930년대

1930's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통해 서구식 스타일 유행

역사 1950년대

1950's 전쟁 후 구제품이 널리 퍼지면서 양장에 관심이 높아짐

역사 1960년대

1960's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전국적으로 유행

역사 1970년대

1970's 청바지와 생맥주, 기타로 대변되는 청년 문화가 유행했다.

역사 1980년대

1980's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디스코 스타일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역사 1990년대

1990's 서태지이 등장과 함께 힙합스타일이 대세를 이루었다.

역사 2000년대

2000's 일명 효리바지로 불린 카고바지, 밀리터리 룩의 유행과 함께 확산되었다.

역사 2010년대

2010's 발목까지 딱 붙는 스키니 바지가 오늘날까지도 바지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역사 2016년

2016's 개성이 돋보이는 스타일과 복고풍이 혼재되어 유행

역사 2018년

2018's 2018 F/W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작품. 신규용 디자이너의 블라인드니스

도심 속 봉제 산업 역사 공간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우리의 삶과 함께해온 봉제 산업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는 도심 속 문화 역사 공간이다.
공간마다 담긴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음피움

외벽 디자인

가로 줄무늬로 단장한 외벽은 실이 돌돌 감긴 실타래와 석재를 층층이 쌓아 만든 한양도성 낙산 구간을 형상화해 지역성을 살렸다.

외벽디자인

4층바느질 카페

테라스를 겸한 아담한 셀프 카페로, 창신동과 봉제 거리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바늘질 카페

3층봉제마스터기념관

30~40년간 현직에 종사하며 자신만의 전문성을 구축한 봉제 장인들을 ‘봉제마스터’로 선정, 이들이 만든 제품과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스토리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봉제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도구인 봉제 장인들의 가위도 전시했으며, 실제 작업 현장 사진과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봉제마스터기념관

2층봉제역사관

재봉틀로 작동하는 인터랙티브 영상과 사진, 신문 기사 등 200여점의 전시물을 통해 18세기 산업혁명부터 오늘날의 창신동에 이르기까지 봉제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봉제역사관

2층단추가게

형형색색의 단추와 다양한 봉제 부자재, 봉제인이 직접 생산한 봉제 제품을 전시했다.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형 워크숍 키트 등도 구매할 수 있다.

단추가게

1층봉제자료실

봉제와 관련한 책자, 잡지, 지역 봉제인 인터뷰 영상 등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수집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봉제자료실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공휴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소
종로구 마들로5가길 66-107
문의문의
02-2289-6865

이정은일러스트 조성흠

사진홍하얀, 이음피움,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황금나침반), 국가기록원

참고자료패션엔, <한국패션협회 30년사>, 국가기록원

문서 정보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④]실과 바늘로 이어져 꽃으로 피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33624444 등록일 2018-05-31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8-04-26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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