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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평행이론] 서울은 특별시가 되고, 아르헨티나는 에비타에 열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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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00년 역사상 본격적인 서울 지명 사용

1945년 8월 15일, 온 나라와 함께 서울도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한동안 서울의 공식 명칭은 일제가 붙인 ‘경성부’로 남아 있었다. 딱 1년 뒤. 38선 이남을 통치하던 미 군정이 발표한 서울시헌장 제1장 제1조는 “경성부를 서울시라 칭하고 이를 특별자유시로 한다”라고 선언했다. 드디어 ‘경성부’라는 이름을 버리고 ‘서울특별자유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2,000년 서울 역사상 ‘서울’이란 지명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조선 시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은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서울이란 신라의 수도이던 ‘서라벌’에서 유래한 말이다. 서라벌이 1,000년 동안이나 수도의 지위를 누리면서 ‘서울(서라벌)’이라는 고유명사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 ‘서울’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공식 명칭은 한양(1395년 이후엔 한성)이었다. 1946년 ‘서울특별자유시’가 탄생하면서 서울은 다시 한번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서울과 짝을 이룬 ‘특별자유시’라는 명칭은 ‘Independent City’라는 영문을 의역한 말이다. 이는 미국 버지니아주 등에서 실시하는 중앙정부에 직속된 독자적인 지방정부를 가리켰다. 직역하면 ‘독립시’가 되었으나 우리말로는 어색해 ‘특별자유시’로 의역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자유’를 빼고 ‘서울특별시’가 되었다.

‘경성부’일 때는 경기도에 속하던 서울은 ‘특별시’라는 지위를 얻으면서 행정상 직능과 권한이 도 단위와 대등하게 되었다. 더불어 일본식 지명인 ‘정(町), 정목(丁目), 통(通)’을 현재의 ‘동(洞), 가(街), 로(路)’로 바꾸면서 일제가 붙인 지역 이름을 바꾸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일본인이 모여 살던 ‘본정’은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무로, ‘황금정’은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가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일제 청산처럼 일본식 지명 개정 사업도 철저하지 못했다. 서울을 대표하는 명동은 메이지[明治] 천황에서 유래한 ‘명치정’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지 마오, 아르헨티나여

경성부가 서울특별자유시로 이름을 바꾼 해,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는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빈민촌에서 태어나 육군 대령으로 1943년 쿠데타에 참여한 페론은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거친 후에 대통령에 도전했다.

그의 당선에는 선거 한 해 전에 재혼한 아내 에바 페론 역할이 컸다. 남편처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에바는 모델과 라디오 DJ, 영화배우로 성공했다. 이후 가난한 이를 돕는 데 앞장서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남편의 대통령 선거 때는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국민 스타 반열에 올랐다. 영부인이 된 후에도 빈민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1952년, 겨우 33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극적인 삶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마돈나가 열창한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여전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다.

구완회(작가)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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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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