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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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입구에 삼색등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삐거덕 소리가 나는 문을 열면
비누와 스킨, 포마드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훅 끼쳐온다.
이발소, 이발관 혹은 이용원이라 부르는 곳. 단발령 이후 120년 동안 이발소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조그만 마을의 이발사’
이준관

나는 조그만 마을의 이발사가 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햇빛과 바람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턱수염을 밀어주는 이발사가 되고 싶다.
비록 내 가위질은 서툴겠지만,
나귀처럼 가위는
스프링이 낡은 의자에 앉아 있는
그들의 삶을 위로해주는 말을
속삭일 것이다. (중략)

이발은 단순히 머리만 만지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마음까지 돌보는 것이다. 손님이 푹 꺼진 의자에 앉아 넋두리를 풀면 머리를 자르던 이발사가 두런두런 맞장구를 쳐준다. 뭉글뭉글 면도 거품처럼 세상 사는 얘기가 풀어지고, 그간 쌓인 설움과 고됨이 시퍼런 면도날과 가윗날에 싹둑싹둑 잘려 나간다. 비단 가난한 서민뿐일까? 재벌 총수, 정치가, 학자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세상살이를 푸념하고 위로받은 곳이 이발소였다. 심지어 이발소는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동네에 떠도는 이런저런 소문부터 집안 경조사까지 이발소에서 듣고 전해졌다. 이발소가 한창 호황을 누리던 1970~1980년대에는 서울 중구에만 이발소가 500여 개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래된 동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장소가 됐다.

문명화 과정에서 탄생한 첨단 문화의 상징

“단발은 위생적이고 집무상 편리하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행정 개혁과 국민 생활 향상의 어견지에서 맨 먼저 그 수범을 신민 앞에 내려 보이셨다. 대한 국민인 자는 근엄히 이 성지(聖旨)를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

1895년 11월 13일, 당시 대한제국 임시 내부대신 유길준이 내린 고시다. 이틀 뒤인 15일 고종과 세자가 머리를 자르고, 16일에는 관료와 군인이 머리를 잘랐으며, 17일에는 이른바 단발령이 전국에 내려졌다. 그러나 죽을지언정 머리는 자를 수 없다는 유생들의 격렬한 저항에 결국 고종은 강제로 머리를 자르게 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01년, 홍종윤이라는 사람이 인사동에 국내 최초 이발소인 동흥이발소를 열었다. 홍종윤은 1908년 10월 28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본인이 이발 졸업생을 고빙하고, 소독 기계를 특별히 신설하였사오니 첨군자는 종로 어물전 뒤 고등 이발소로 내림하시기를 희망함”이라는 광고를 실었다. ‘고빙(雇聘: 학식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기려고 예의를 갖춰 모셔옴)’이나 ‘첨군자(僉君子: 여러 점잖은 사람, 여러분)’라는 단어가 당시 이발소의 위상을 말해준다. 단발령과 함께 등장한 이발사는 선진 직업이었고, 이발소는 문명화 과정에서 탄생한 근대적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명절에나 한 번씩 하는, 연례행사 수준이던 이발이 본격화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중·고등학교 남학생과 직장인의 단정한 용모가 의무화되면서 이발소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62년 간 문화이용원을 지키고 있는 지덕용 선생.

60년을 한눈 한 번 안 팔고 깎았어

열일곱 살 때 한 이발사의 호의로 문화이용원에 일자리를 얻어 보조원 생활을 시작한 지덕용 선생은 군대 다녀온 3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62년 동안 문화이용원을 지키고 있는 이·미용 역사의 산증인이다. 사실 지난 2012년 손가락 관절염과 다리 부상으로 잠시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가 단골손님이 지 선생만 찾는 바람에 다시 가위를 잡았다. 1969년 직원에서 문화이용원 사장이 됐을 때도 단골이 큰 역할을 했다. 인수금이 모자란다는 말을 들은 단골손님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발소를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거금 150만 원을 선뜻 빌려준 것.

5개의 최신식 이발 의자를 갖추고 이발사 8명, 보조원 3명이 일하던 문화이용원은 서울 시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 이발소였다.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닫았다. 이발하고 등교하려는 중·고등학생을 시작으로 하루 100명 이상 손님이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혜화동에 기업인, 학자가 많이 살아 단골 중 유명인도 수두룩했다. 1950~1960년 대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은 1세대 기업인과 학자들의 사랑방이었을 정도다. 얼마 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올해 여든을 맞은 지덕용 선생은 오늘도 깔끔한 복장으로 이용원 문을 연다. 멀리서 오는 단골손님이 행여 헛걸음할까 봐서다. 단골손님 사진, 이가 다 빠진 가위, 관절염으로 흉하게 뒤틀린 손톱을 내보이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역사를 만드신 분들의 머리를 이 가위로, 이 손으로 깎은 게 내 인생의 자랑이야. 이만하면 잘 살지 않았나?”

6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문화이용원. 옷장이며 돈 통, 이발 도구, 손님도 함께 나이를 먹었다.

1961년(단기 4924년) 이용 요금표. 이발 요금 400환은 현재 화폐로 치면 40원이다.

문화이용원과 성우이용원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용원에서 먹고 자면서 새벽 5시에 손님 머리 감길 물을 길어오는 일부터 머리 감기기, 면도하기, 드라이를 배우며 3년 반을 보내고 정식 이발사가 됐어.”

깔끔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신개념 이발소’인 바버숍이 주목받고 있다.

젊은 감각의 남성 공간으로 재탄생한 이발소

이제는 동네 주민이나 오랜 단골만 찾는 추억의 장소가 된 이발소. 한때 동네마다 두세 곳 있던 이발소가 왜 이렇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대표적 이유로 장발 문화와 퇴폐 이발소를 들 수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머리를 기르는 장발 문화가 유행하면서 이발소 대신 미용실로 향하는 발길이 잦아졌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향락 문화에 이발소가 퇴폐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갔다가 민망한 꼴을 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발소가 내리막길을, 미용실이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였다. 눈높이가 한층 높아진 젊은 층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발소는 나이 든 남자나 가는 곳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바버숍 문화가 생기면서 이발소에 대한인식이 바뀌고 있다. 바버숍은 이발소라는 뜻의 영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신개념 이발소’ 정도로 해석된다. 약 3년 전 뉴욕의 변호사나 펀드 매니저 등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깔끔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이발소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뉴욕식 이발소 열풍이 우리나라에도 번져 강남과 홍대를 중심으로 바버숍이 생겨나고 있다. 이 중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엉클부스’를 찾았다. 우리나라 최연소 남성 이용 기능장인 진민준 원장은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남성만의 이용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발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엉클부스를 찾은 대학생 경주현 씨는 “평소 다니던 미용실에서 내가 원하는 짧은 헤어스타일을 잘 못해 고민하던 중 소문 듣고 찾아왔다”며 “이발소는 처음인데 여자 고객이 많은 미용실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실제로 엉클부스에는 단정하면서도 멋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원하는 직장인, 파격적 헤어스타일을 원하는 젊은 남자가 많이 찾고 있다. 이발소 풍경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잊혀가는 줄 알았는데, 좀 더 젊어진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어 반가웠다.

마크 트웨인은 “세상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이발사가 일하는 방식과 이발사의 환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곳에서, 젊은 사람은 젊은 곳에서 공간과 스타일은 달라도 같은 목적으로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긴다. 그렇게 이발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뉴욕식 인테리어로 젊은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엉클부스.

단정이봉사단의 손끝으로 전하는 사랑

개봉동 개명경로당이 미용실로 변모했다. 구로구 자원 봉사센터 소속 단정이봉사단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가는 이·미용 봉사’ 활동을 펼친 것이다.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한 번 자르려면 1만 원 이상해요.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공짜로 잘라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윤, 82세) “단정이봉사단의 김해옥은 “이 같은 보람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봉사를 하고 있다”며 기다리는 사람은 많은데, 봉사자가 부족해 늘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단정이봉사단은 2003년 이·미용 기술이 있는 봉사자들이 뜻을 모아 구성한 단체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을 찾아다니며 봉사한다. 3개 팀으로 나누어 매달 첫째·둘째·넷째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봉사 활동을 할 뿐 아니라 추석과 명절을 앞두고는 2~3일씩 하기도 한다. 그때는 주로 집으로 찾아가는데, 이동하지 못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해서다.

단정이봉사단은 이런 봉사 정신을 인정받아 2015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구로구 자원봉사센터 배영호 주임은 “봉사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봉사인데, 단정이봉사단은 한 번도 빠짐없이 봉사를 했다”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상을 수상했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미용 봉사뿐 아니라 이동 목욕 차량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노숙인, 중증 장애인, 데이케어센터 어르신 등 이동하기 힘든 노약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미용, 이동 목욕 등 위생·청결 서비스 봉사 활동이나 서비스 요청은 각 지자체 자원봉사센터나 복지종합센터, 복지과에 문의한다.

이발소의 전신은 외과! 이발 문화,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버숍은? 트루핏앤힐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이발소(바버숍)는 영국의 ‘트루핏앤힐’이다. 1805년 런던 메이페어에 처음 문을 연 트루핏앤힐은 이후 200년 넘게 버킹엄궁을 드나들며 영국 왕족의 면도와 커트를 담당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 총리, 소설가 찰스 디킨스,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도 이곳 단골이었다. 현재 전 세계 13개국에 31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오픈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는? 성우이용원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우이용원’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1927년 이발 기술자이던 서재덕 씨가 문을 연 이후 1935년부터 서씨 사위인 이성순씨가 이어받았고, 현재는 3대째인 이남열 사장이 56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그 역사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포마드와 바리캉과 양도

포마드는 매끈한 올백 머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화장품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두발뿐 아니라 전신 미용에도 썼다고 한다. 50~60대 남자 중에는 바리캉으로 머리털 안 뽑혀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무 손잡이가 달린 양손 바리캉이었다가 한 손 바리캉을 거쳐 전기 바리캉이 나왔다. 양도는 자루가 달려 접었다 폈다 하는 이발소 전용 면도기. 쓸 때마다 가죽에 갈아서 날을 세워 수염을 깎다가 얼굴을 베이기 일쑤였다.

이발사 겸 외과 의사, 삼색등은 외과의 상징

중세 유럽 사람들은 이를 뽑거나 종기의 고름을 뺄 때, 신체에 칼을 대야 할 때 이발소를 찾았다고 한다. 당시 내과 의사는 정식 대학 교육을 받은 고위급 집안 자제들로, 치료법과 약 효능 등을 공부했다. 반면 외과 의사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므로 이발사가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프랑스의 외과 의사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가 외과 의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치질로 고생하던 루이 14세를 치료해 명성을 얻은 펠릭스 덕분에 왕립 외과 아카데미가 설립되었고, 1740년부터 프랑스에서는 이발사와 외과 의사의 겸업이 금지되었다. 삼색등은 중세 시대에는 외과의 상징이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동맥과 정맥을, 흰색은 붕대를 의미한다. 긴급 환자가 쉽고 빨리 알아볼 수 있도록 이발소 문 앞에 내건 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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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29388115 등록일 2017-03-15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운영자 생산일 2017-03-14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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