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문화읽기 ⑦]서울둘레길 4코스 <2> 우면산 구간(양재시민의 숲~사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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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4코스<2> 우면산 구간(양재시민의 숲~사당역)

단풍이 아래로 번지고 있다. 높고 추운 북쪽에서 남으로 남으로, 산정에서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서울의 남쪽 관문인 양재시민의 숲도 울긋불긋 물들었다. 서초구의 크고 너른 허파로 여름내 도심의 열기를 빨아들인 숲에서 나무들이 온 힘을 다해 열매를 맺고, 이제 남은 기운 모두 가지 끝에 쏟아내고 있다. 만추의 숲에 깃든 그늘이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이유다.

서울사랑

왼쪽) 가을 꽃이 한창인 양재시민의숲 오른쪽) 어질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를 흐르는 양재천

윤봉길을 만나는 서늘하고 뜨거운 시민의 숲

대모산과 구룡산을 지나온 4코스 둘레길의 첫 구간을 우면 산으로 이어주는 곳은 시민의 숲이다. 1986년 서울아시안 게임이 열리던 해에 처음 문을 연 공원의 어린 나무들이 삼십년 가까이 자라 장년의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 사이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 옆으로 유격백마부대충혼탑,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탑 등이 세워져 있어서, 붉은 단풍이 들면 어쩐지 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시민의 숲’이란 이름처럼 그늘이 풍성한 만큼 숱한 시민들의 사연도 많은 숲이다.

둘레길은 매헌기념관 앞에서 출발한다. 4코스 두 번째 구간을 시작하는 빨간 우체통에서 무궁화를 배경으로 선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 담긴 스탬프를 찍는다. 도장만 찍고 서둘러 나아가기보다 잠시 기념관에 들러 스물다섯 짧고 굵은 생을 살다간 사내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산다. 이상은 무엇 이냐? 목적의 성공자이다. 보라, 풀은 꽃이 피고 나무는 열매가 맺는다. 만물주(万物主) 되는 나도 이상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하였다.”

윤봉길 의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다. 그는 ‘부모 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剛毅)한 사랑을 각오’했고, 그 사랑은 일제의 심장부를 향해 던진 폭탄으로 발화했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 길을 떠난다.”고 쓴 그의 편지는 매화가 필 무렵 집을 떠나던 해 시월에야 중국 청도에서 온 것이다. 단풍이 내려오듯 북에서 남으로 온 편지는 서늘하고 또 뜨겁다. 부모와 어린 두 아들을 아내 곁 에 두고 떠날 때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 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還).”고 했던 사내는 결국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삶을 택했다.
매헌기념관 주변에는 밤처럼 생긴 마로니에 열매가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그 작은 열매도 키가 큰 마로니에 나무의 뜨거운 이상이고 목적이라 생각하면 달리 보인다. 열매들이 흩어진 자리에서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길을 떠난다.

먼 길을 돌아온 생명의 물길, 양재천 건너 산으로

둘레길은 시민의 숲에서 양재천을 건너 우면산으로 향한다. 양재천은 관악산 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구룡산과 청계산이 기른 여의천과 합쳐진 다음 탄천을 거쳐 한강으로 나아간다. 어질고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양재(良材)라고 부르면서 마을의 물길도 그렇게 불리게 되었지만 옛 기록에는 공수천, ‘백로가 많이 모여드는 여울’이란 뜻으로 학탄(鶴灘)이라고도 불렸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의 이름도 그렇게 생긴 것이다. 양재천은 1970년대 잠실섬 일대를 뭍으로 연결하는 강남 일대 대규모 토지 개발 사업때 물길이 바뀌면서 탄천의 지류가 되었다. 이때 굽은 물길도 곧게 펴졌는데 잠실의 뽕밭이 사라진 것처럼 하구의 풍경도 전설로 남았다.
학여울은 이름으로만 남았지만 다행히 양재천에는 지금도 백로뿐 아니라 청둥오리와 왜가리들이 찾아든다. 한때 죽음의 하천으로도 불렸던 물길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천변을 곧게 펴기 위해 둘렀던 콘크리트 둑을 걷어내고 사라진 여울과 소를 다시 만들며 사람들은 애써 먼 길을 돌아서 와야 했다. 양재천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생태 교과서다. 잠시라도 그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을볕 아래 반짝이는 은빛 물살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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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서초구의 녹색 허파, 우면산 둘레길의 숲은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다. 오른쪽) 우면산 숲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낮고 편안하다.

우면산에서 북쪽으로 남산 너머를 보다

소가 동서로 길게 누워 자는 모습’이라는 우면산은 산 이름처럼 길도 편안하다. 낮은 산자락이 추수가 끝난 들판 가을볕 아래 졸고 있는 소처럼 보였다면, 그렇게 보는이의 마음도 평온했을 것이다. 불교에서 소는 깨달음의 상징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수련의 첫걸음을 심우(尋牛)라고 하는데 만해 한용운이 살던 집이 심우장인 것도 그런 연유다. 소를 찾아 길을 떠나고 소를 보고, 얻어 기르다가 마침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소도 잊고 자신도 잊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깨달음의 여정이 십우도 (十牛圖)다. 인생의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소들이 잠을 자 든, 밭을 갈거나 풀을 뜯고 있든 소는 변함없이 소일 뿐이 다. 그런데도 바라보는 이가 소를 부러워하고 가엽게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내 안의 소는 무시로 다른 모습이다. 우면산이 자랑하는 전망대는 정상 부근에 있는 소망탑인데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울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그곳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여러 차례 만나 게 된다. 그러나 둘레길이 지나는 대성사 절 마당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그런대로 훌륭하다. 잠자듯 누운 소의 눈으로 편안하게 서울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서면 한양 도성 남쪽에 있는 ‘남산도 우면산 북쪽의 산이 된다. 옛사람들은 남산을 말이 안장을 벗어 놓은 형상’이라며 마뫼라고도 불렀다. 달리는 말의 등에 올라가 한강 건너 남쪽을 바라보면 길게 누운 이 산이 과연 잠자는 소처럼 편안해보였을까. 남산의 등 뒤로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높고 우람한 산줄기를 중심으로 동서로 뻗은 안산과 인왕산 그리고 수락산, 불암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의 바위산들이 한강 이남의 둘레길이 지나온 유순한 산들에 비하면 확연히 기운이 드센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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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전하러 온 인도 승려가 우면산 약수로 병을 고치고 세운 초당 자리에 들어섰다는 대성사

오래된 비보처 대성사를 지나 서리풀 벌판으로

먼 곳의 풍경만 바라보다 무심코 절을 지나치려는 사람들에게 ‘한성 백제시대 천년 고찰터’라는 안내판이 힐끔 뒤를 돌아보게 한다. 대성사에는 384년 백제 침류왕 원년에 불법을 전하러온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처음 초당을 세웠는데 물갈이로 고생을 하다 우면산 약수로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절이 ‘백제불교초전법륜성지’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건 것도 그런 연유다. 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옥고를 치른 용성스님의 유지를 받든 절이라는 사실이다. 용성스님은 한용운과 윤봉길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임시정부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던 독립운동가로 일제시대 수많은 불교 경전을 한글로 번역해 내기도 했다. 이런 사연들을 알고 나면 매헌기념관에서부터 대성사로 이어지는 길의 기상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산자락 곳곳에서 2011년 우면산 산사태를 복구하며 세운 사방댐과 골막이 옹벽들을 만나게 되는데, 대성사 옆 골짜기도 산사태 복구 이후 휑하다 싶게 넓어졌다. 당시 산사태는 신기하게 법당만 피해 양 갈래로 산을 허물어트리고 예술의전당까지 토사와 나무들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둘레길 아래는 거대한 삿갓 모양의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 지붕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예부터 비보처에 사찰을 지었다는 풍수의 지혜를 떠올리며 새삼 가슴을 쓸어안게 되는 곳이다.

우면산은 산은 낮아도 긴 산줄기가 품은 골짜기가 많아 골골이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골마다 품고 있는 이름난 약수터만도 20여 곳이 넘는다. 그래서 산 아래 서초동은 옛날부터 큰 비라도 내리면 마을 어귀까지 흥건히 물이 고이는 땅이었다. ‘물기가 서려있는 벌판’이란 뜻의 ‘서릿벌’이 ‘서리풀’로 변하고 이것이 서초동이 되었다고 한다. 대성사를 지나 조금만 더 걷다 보면 갑자기 숲이 열리면서 탁 트인 억새 벌판이 나타난다. 산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 공들여 심은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억새 뿌리가 움켜쥔 흙더미 위로 땅이 다져지고 참싸리 같은 관목들이 무성해질 것이다. 우면산에는 산사태 복구를 하면서 깊이 뿌리 내리는 상수리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청단풍 묘목 등을 주로 심었다고 한다. 어린 나무들이 쑥쑥 자라는 만큼 무르던 땅도 단단해질 것이다.

억새꽃 흐드러진 오솔길 사이로 걷는 동안 무너진 자리를 보듬고 살리는 씨앗과 뿌리의 힘이 새삼 고맙다. 서초의 서리풀을 상서로운 풀이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저무는 햇살 아래 수런거리는 우면산의 억새를 보면 정말로 그런 말을 수긍하게 된다.
이제 둘레길은 자웅탑이라 이름 붙인 돌탑 두 개를 쌓아놓은 나지막한 돌탑고개를 넘고, 성산약수터로 이어진다. 뒤이어 성뒤마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나면 우면산 기슭을 따라 길게 이어지던 둘레길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막바지에 전망이 탁 트이는 바윗길 위에 서면 지나온 길이 짧아진 해거름처럼 아쉽다. 길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다는 마을 방배동으로 내려선다. 잠자는 소처럼 누운 산에서 내려오면 남태령 너머 관악산이 기다리고 있다.


글 김선미(작가) 사진 나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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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28037162 등록일 2016-11-15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5-11-19
라이선스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