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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 정동에 서린 대한제국의 숨결! 고종의 길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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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절’에서는 서울의 오래된 건축물과 장소를 소개합니다.
서울 시민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대화해보세요.

정동을 지키는 ‘옛 러시아 공사관’

개화기의 역사와 낭만이 가득한 정동에 오면 사람들은 향수에 젖는다. 덕수궁 돌담길과 옛 대법원 터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를 복원한 정동극장, 지금은 사라졌지만 터가 남은 배재학당과 손탁호텔까지, 100여 년 넘게 산 친구들이 그리는 세월의 흔적을 보며 근대화를 겪지 않은 이들도 유년 시절로 돌아가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면 대체 시계탑인지, 등대인지, 짓다 만 건물인지 잘 모른다. 나는 중구 정동공원 안에 있는 ‘옛 러시아 공사관’. 정확히 말하면 건물 전망탑에 해당한다. 몸체 없이 탑 부분만 남아 있으니 이상해 보일 수밖에. 조선 말기, 서구 열강의 세력이 이 땅으로 뻗치면서 1885년 조선은 러시아와 한로수호통상조약을 맺고, 나를 그해에 착공해 1890년에 탄생시켰다.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지금 남아 있는 내 몸은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망루로 쓰였으며, 지금은 없지만 개선문 양식의 정문은 당시 조선에 드리운 러시아의 견제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특이했다.

아관파천 현장

조선 사회가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하자 어떤 이는 서구 세력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배척했고, 어떤 이는 환영했으며, 또 어떤 이는 조선 사회의 변화를 꿈꿨지만 급격히 밀려드는 열강 세력을 두려워했다. 개방을 원하는 개화파와 이에 맞서는 수구파가 대립했고, 그 양상은 갑오개혁과 동학농민운동으로 나타나 조선을 이용하거나 침략하고자 한 열강을 더욱 애타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음모로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게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며 조선의 정세는 더욱 혼돈에 빠졌다. 위기를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힘을 빌려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관으로 사용하던 나에게로 피신했다. 이것이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사건이다. 당시 고종은 내가 가진 제일 좋은 방을 사용했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르네상스풍 방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이듬해 2월 20일까지 약 1년간 머물렀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 공관에서 방 하나를 빌려 기거했다는 사실이 통탄할 일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경복궁의 불안한 나날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안해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란의 시간과 잊힌 날들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인이 만들었고, 또 러시아 공사를 위한 장소였기에 사람들은 정동 언덕에 자리한 특이한 외모의 나를 보며 두려워했다. 나는 혼란과 제국주의의 거센 기류를 보여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비록 정동에 다른 공사관도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태어났으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1902년 고종이 손탁에게 하사한 정동의 사저가 러시아풍으로 꾸며져 ‘손탁호텔’로 운영되기도 했다. 독일인 손탁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따라 내한해 아관파천 당시 고종을 내 품으로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고, 영빈관을 호텔로 개조해 외국 귀빈을 위한 숙소로 운영하는 등 외교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하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하면서 나는 폐쇄되었고, 일제 침략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1909년 손탁이 한국을 떠난 뒤 1922년 손탁호텔이 철거되었다.

구한말 역사가 어린 정동 길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일제강점기의 비극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에 다시 아픔이 찾아왔다. 1950년, 이념의 갈등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슴과 이 땅에 남은 근대화의 소산을 파괴시켰다. 나 또한 이 시기에 내 몸 대부분을 잃고, 1973년 지금 남은 탑만 복원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갔다. 이는 지독했던 침탈의 역사를 잊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지난날의 과오를 잊고 싶은 나의 침묵 때문이었을까. 정동공원의 언덕을 지키는 등대처럼, 시계탑처럼 나의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고, 도시화에 밀려 정동의 터줏대감들이 사라져갈 무렵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구한말 역사가 어린 정동 길을 복원한다는 것이다.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이동했던 경로인 ‘고종의 길’을 비롯해 정동 일대가 대한제국 모습대로 차례차례 복원된다고 한다. 나는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대한제국을 멸망으로 이끌고, 이 땅의 주인인 조선인을 아픔과 시련으로 몰아간 지난날을 용서받을 기회를.

정동에 남은 우리는 지난날의 고통과 달리, 정동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리라.
구한말 유산을 보며 분노와 슬픔보다는 당시의 역사를 되새기고
미래를 밝혀주는 힘으로 여겨주길 역사를 잊지 않은 후손에게 바란다.

옛 러시아 공사관은 1950년 한국전쟁 때 건물 대부분 파괴되었다.

손탁호텔을 방문한 손님과 그의 애완견. 사진 뒤쪽에 러시아 공사관이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옛 러시아 공사관의 탑. 1981년 발굴 작업으로 탑 동북쪽에서 밀실과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옛 러시아 공사관은 2021년까지 원형대로 복원할 예정이다.

글 김승희 자료 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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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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