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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곳을 가다] 종로에서 서울의 오래된 풍경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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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면서 만나는 골목의 풍경은 모든 게 새롭다. 큰길의 화려함보다는,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똑같은 체인점 간판 위주로 포장된 길거리보다는,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에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스미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풍경이 켜켜이 쌓인 종로의 작은 골목골목에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을 만났다.

사람의 자취가 만들어낸 골목, 피맛골과 인사동

큰길 너머로 갈래갈래 작은 골목들이 뻗어 있는 종로에는 추억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없는 게 없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였던 만큼 오랜 시간 땅을 낮추고 건물을 높이며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담아왔기 때문이다. 종로의 대표적인 골목은 피맛골이다. 피맛골의 어원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서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피맛골 주위에 선술집·국밥집·색주가 등 술집과 음식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선시대만큼은 아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피맛골은 서민들이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며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는 곳이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던 골목은 높은 빌딩들이 가득한 골목으로 바뀌었다. 군데 군데 피맛골의 모습을 간직한 작은 술집과 음식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예전의 그 정취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굽이굽이 걷다 보면 예스러운 멋을 지닌 인사동으로 이어진다. 어느 원로 수필가가 초로에 접어들어서 잔주름이 보일 듯 말 듯한 얼굴’ 같은 동네라 표현한 인사동에는 좁다란 길 사이로 지물포와 필방, 골동품점, 전통 찻집 등작은 가게들이 배꽃처럼 잔잔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이 거리에 하나 둘 들어서면서 화려한 간판들에 가려져 그리운 시간의 풍경이 많이 사라졌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인사동은 바쁜 도시의 일상이 달음질치는 종로통 지척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와 정겨움이 흐르는 곳이다.

어르신들의 놀이터, 낙원동 먹자골목

종로3가 탑골공원 뒤편에는 낡고 오래된 식당이 곳곳에 박혀 있다. 1980년대 후반쯤에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싸고 푸짐한 ‘낙원동 먹자골목’이다. 노인들과 서민들이 주머니 걱정 없이 밥과 술을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노인들과 가난한 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골목이다. 순두부찌개 2,000원, 콩나물해장국 2,000원, 돼지국밥 3000원…. 싸다고 음식의 질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한 입맛 하는 젊은이들도 이곳을 들락거린다. 서울의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한 식당에 앉아 음식을 즐기는 광경은 이곳이 아니면 보기 드물지 않을까 싶다. 유난히 이곳엔 동네 이름에서 따온 ‘낙원’이라는 이름의 식당 간판이 많은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르신들을 정답게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어쩐지 ‘낙원’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

일상의 허기를 달래는 광장시장 먹자골목

시계골목에서 종로5가 방향으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광장시장으로 이어진다. 1905년 한성부에 등록한 국내 최초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은 100년이 넘은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품목들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서민이 먹어온 소박한 외식 밥상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먹자골목이다. 먹자골목을 대표하는 음식은 ‘마약김밥’과 ‘녹두빈대떡’. 마약처럼 한 번 먹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맛이라고 해서 붙여진 마약김밥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당근과 시금치 그리고 단무지가 들어간 것이 전부다. 마약김밥이 이렇게 단순한 모양을 가지게 된 데에는 재료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부터 장사를 시작한 탓에 최소한의 재료로 간편하게, 빨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김밥을 천천히 씹고 있으면 화려하기보단 담백하고, 자극적이기보단 고소한 정직한 김밥의 맛이 전해진다. 광장시장 먹자골목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가게는 녹두빈대떡집이다. 녹두를 맷돌에 갈고 김치와 나물 등을 넣어 반죽을 만든 뒤 그대로 불판에 부쳐내는데 빈대떡 특유의 고소한 냄새와 지글지글 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침이 돈다. 갖가지 음식 냄새에 이끌려 이것저것 먹다 보면 어느새 배는 불러오고, 그렇게 여러 가게와 상인들을 만나고 나면 이곳에서 가장 짙은 냄새는 음식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변해가는 종로의 골목길을 찾아 나선 길. ‘도시에서 골목은 왜 필요할까?’를 생각해본다. 오래된 골목은 낡고, 더럽고,복잡하다. 하지만 그 골목길엔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이 여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월을 따라 서울 시민들이 쌓아온 삶과 추억, 애환이 묻어 있는 종로의 골목들이 소중한 이유다.





글 이승희 사진 이서연(AZA스튜디오) 자료 제공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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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곳을 가다] 종로에서 서울의 오래된 풍경을 만나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관리번호 D0000028036859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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