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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화유산 답사] 종로구 첫 구립 미술관으로 탄생한 박노수 화백의 집, 박노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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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낸 작가’로 평가받는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박노수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박노수미술관은 종로구 첫 구립 미술관이기도하다. 1938년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서양 가옥의 건축양식이 섞인 절충식으로 지은 이 집은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남정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종로구 1호 구립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박노수미술관이다. 친일파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1938년에 건립한 2층짜리 건물인데, 광복 후 수차례 소유주가 바뀌다 1973년 박노수 화백이 구입해 2013년 2월 별세 할 때까지 거주했다. 박노수 화백의 손때와 체취가 가득한 이곳은 1991년 가옥의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이 집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서양 가옥의 건축양식이 섞인 절충식으로 당시 중국 기술자들이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붉은 벽돌을 쌓은 뒤 한옥 서까래를 걸고 지붕에 양기와를 얹은 이 건물은 남쪽으로 향해 있으며, 건물 서쪽에 포치를 설치했는데, 포치의 서쪽과 북쪽 벽은 벽돌로 아치를 틀어 뚫어놓았다.


프랑스풍으로 꾸민 1층에는 온돌방·마루·응접실 등이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만들었으며, 내부에 벽난로가 3개나 설치되어 있어 당시 윤덕영의 위세를 엿볼 수 있다. 2층에는 원래 베란다가 있었으나 30여 년 전에 방으로 바꾸었다. 마룻바닥과 문짝, 문설주는 모두 오래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 홍송을 사용했다.



일본 화풍을 떨치고 전통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낸 거장
윤덕영은 이완용과 함께 한일강제병합 조인에 적극 가담했으며, 의정부찬정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친일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에서 40년 넘게 살며 작품 활동을 한 박노수 화백은 해방 이후 국내 화풍에 만연해 있던 일본 화풍을 떨쳐버리고 전통적 소재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선묘, 절제된 색채와 여백, 대담한 구도가 어우러진 독창적 화풍을 시도했다. ‘전통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낸 작가’로 평가받는 박 화백은 이곳에서 ‘달과 소년’, ‘고사’, ‘월화취적’ 등 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대작을 완성했다.
박노수미술관에 들어서면 회화나무, 사철나무, 백송, 백일홍, 감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우거진 정원이 눈에 띈다. 정원 가장자리에는 향로석 같은 수석들이 나름의 자태를 뽐내며 늘어서 있다. 박노수 화백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정원을 통해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석, 수목, 꽃, 석등등 1천여 점이 넘는 조경물에서도 박 화백의 화풍이 보이는 듯하다.


박 화백은 2011년 종로구에 작품 500여 점과 소장하고 있던 고미술품, 골동품, 수석 등 994점을 기증했고 유족은 가옥을 미술관으로 사용토록 허용했다. 그 덕분에 일반인들이 한국 미술계 거장의 작품을 그가 살던 집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종로구는 가옥을 고스란히 보존하기 위해 벽에 그림을 걸지 않고 전시용 임시 벽을 설치했는데, 이 때문에 지금은 창문이나 베란다가 가려져 있는 상태다.


박노수미술관에서는 개관 전시로 <달과 소년>을 기획, 오는 12월 25일까지 박 화백의 작품 26점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 고유의 화풍을 한눈에 보여주는 수묵 담채화 ‘류하’, ‘달과 소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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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화유산 답사] 종로구 첫 구립 미술관으로 탄생한 박노수 화백의 집, 박노수미술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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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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