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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서울 기행] 금천구는 패션·IT·문화 메카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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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는 1980년 영등포구에서 분구한 구로구에서 1995년 재분구한 구로, 광진구(성동구에서 분구)와 강북구(도봉구에서 분구) 등 서울시 자치구 막내 삼총사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금천은 유서 깊은 고장임을 알 수 있다.


▲ 금천예술공장 오픈 스튜디오


삼국시대 초기 백제가 다스린 것으로 추정하는 이곳은 4세기 말부터 고구려의 지배를 받으면서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불렸다. ‘뻗어나가는 땅’ 또는 ‘너른 들’이란 뜻이다. 삼국 통일 후 경덕왕 16년(757년)에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곡양현(穀壤縣)으로 개명하는데, ‘비옥한 땅’이라는 뜻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940년 이를 다시 금주(衿州)로 개칭한다. 이 일대가 ‘옷깃 금(衿)’ 자와 인연을 맺은 시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정조 19년(1795년) 시흥현(始興縣)으로 변경되기까지 이곳은 태종이 1413년에 하명한 금천현(衿川縣)으로 불렸다. 고려와 조선조 전반 등 무려 800여 년 동안 쓰던 ‘금(衿)’ 자가 분구로 부활한 셈이다.

 금천은 “하이얀 옷깃 같은 냇물이 흐르던”이라고 한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금천 예찬’에서 보듯 안양천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옷깃 금’ 자에 숨겨놓은 조상의 예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발 연대 이곳은 섬유·봉제 등 의류 공장이 즐비한 공단이었다. 우리의 나이 어린 오누이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수출용 의류를 한 땀 한 땀 직조하던 처절한 삶의 현장이던 곳이다.


▲ 금천구 유일의 전통 사찰, 호압사


▲ 고기 도매시장인 독산동 우시장 / 금천예술공장의 공동 작업실


‘옷깃’과의 절묘한 인연

오늘날 이곳은 서울 최대의 의류 할인 매장인 금천패션타운(옛 가리봉 아웃렛)으로 변모했다. 약 1km에 이르는 가산디지털단지-마리오아울렛사거리가 2011년 11월 패션과 IT가 공존하는 패션·IT 문화 존으로 조성된 이후다.

세계 최대의 패션 타운일지도 모를 이곳은 평일 10만 명, 주말 20만 명의 고객이 찾는 쇼핑 명소다.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온 관광객이 관광버스를 타고 줄줄이 찾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금주→금천현→의류 공단→패션 아웃렛으로 이어지는 ‘옷깃의 연(緣)’은 얼마나 절묘하며 또한 질긴가!
또 하나 절묘한 것이 있다. 금천과 신발의 색다른 인연이다. 구로공단 시절 이곳엔 의류뿐 아니라 신발 공장도 많았다. 그런데 금천구의 행정구역을 지도로 보면, 영락없는 신발 형국이다. 그것도 아주 정밀하게 그린 탄탄한 스포츠화를 빼닮았다.

일반 회화보다는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커뮤니티 아트 등 디지털단지의 특성에 걸맞은 실험적 장르에 몸담은 아티스트가 많이 입주해 있다. 20여 명의 입주 작가 중엔 네덜란드, 터키, 대만 등에서 온 외국 작가도 있다. 재미있는 건 ‘금천 미세스’의 존재. 금천 미세스는 금천구에 거주하는 아줌마 작가를 말한다. 자체 큐레이터를 두고 연극팀까지 입주해 있는 것도 이 공간의 독특한 점이다.


금천예술공장은 매년 오픈 하우스를 진행하는 등 작품 활동뿐 아니라 주민과의 스킨십에 정성을 쏟고 있다. 지난 5월 23일에 2013년 오픈 하우스 행사를 열었는데, 인근 노동자가 축사를 읽어 예술 공장이 공단 안의 유리된 공간이 아니라 공장, 노동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공간임을 부각했다. 자칫 정서가 척박하기 쉬운 공단 노동자들에게 예술이 감성적으로 다가가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사례다.

작품 활동 실적을 발표하는 ‘오픈 스튜디오’를 비롯해 해외 작가 교환 프로그램, 시각예술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지역 연계 교육 프로그램, 커뮤니티 아트 프로그램 등 예술가에게 안정된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주민에게는 문화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구(區)가 나서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예술가를 보듬어준다는 측면에서 타 지자체가 본받을 만한 프로젝트다.


예술 공장 입주하다

구로구 편에 소개했듯, 옛 구로공단 자리는 지금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 산업 중심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변모했다. 그런데 이곳이 예술 공간으로 또 다른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 창작 공간 ‘금천예술공장’이다. 2009년 독산동의 한 인쇄 공장을 개조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 국철 1호선 독산역 1번 출구 쪽 두산초등학교와 가산중학교 사이에 위치한 이곳엔 레지던스 스튜디오 19실, 호스텔 5실, 공동 작업실, 공연 연습실 등을 갖추고 있어 공모를 통해 선발한 작가 20여 명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뛰어난 품질의 고기로 유명한 독산동 우시장

이제 금천구의 명소를 한 곳 한 곳 탐방해보자. 금천예술공장에서 가산중학교를 끼고 돌아 나오면 연도에 고깃집이 늘어선 독산동 우시장이 시작된다. 요란한 집, 예컨대 지상파 TV에 나온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데는 피하자. 저기 조금 허름한 집, 그래 그 집이다.

 스테이크, 등심, 주물럭, 차돌박이, 삼겹살, 항정살 등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소·돼지 부속 쪽이 더 좋다. 예컨대 간, 천엽, 등골(소), 갈매기살 등. 물론 육사시미(양념 안 한 것)나 육회(양념한 것)는 독산동에 온 기념으로 한 점씩 해야지. 아무튼 이곳 고기는 품질은 말할 것 없고 가격도 꽤나 착하다. 내가 잘 다니는 용산 삼각지의 한 고깃집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온단다.
배도 부르고 하니 산책을 시작하자. 독산역에서 금천 마을버스 01번을 타고 시흥동 은행나무사거리에서 내린다. 길 한복판에 밑동이 어른 서너 아름은 됨 직한 은행 고목이 서 있는데, 수령 830년의 시 보호수다. 인도에도 더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 가을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보도교 / 서울 시내 최대 의류 할인 매장이 들어선 금천패션타운


호랑이 기운 누른 호압사

은행나무를 뒤로하고 산 쪽을 향해 관악산 벽산타운 5단지와 2단지를 지나 30분쯤 걸어 올라가면 고색창연한 사찰을 만난다. 이름 하여 호압사(虎壓寺). 금천구 유일의 전통 사찰인 이 절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인 무학대사가 태조 2년(1393년)에 창건했다.

호압사 창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궁궐(경복궁)을 짓는 과정에서 기이한 꿈을 꾸었다. 반은 호랑이고, 반은 모양을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눈에서 불을 뿜으며 궁궐을 들이받으려고 하여 군사들이 화살을 쏘아댔지만 괴물은 짓던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는데, 어디선가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노인이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호암산(虎巖山)이었다.

태조는 노인에게 산봉우리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노인은 “호랑이는 본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저 호랑이 산봉우리의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태조는 왕사(王師)인 무학대사로 하여금 호암산 꼬리 부분에 절을 짓게 했고 ‘호압사’라 이름 붙였다.
호압사엔 서울시 문화재 제8호인 석약사여래부처를 모셔놓았다. 따라서 약사전이 절의 중심이다. 도량 내에 있는 600년 수령의 서울시 보호수 느티나무 두 그루는 이 절의 깊은 역사를 입증하는 자료이자, 절을 찾는 중생에게 편안한 쉼터를 마련해주는 안식처다.

절을 뒤로하고 가파른 구름발치길을 오르면 곧바로 정상에 이르는데, 바로 호암산(해발 393m)이다. 관악산(冠岳山, 해발 632m)에서 이어진 삼성산(三聖山, 해발 481m)의 지맥(支脈)으로 금주산(衿州山)으로도 불리는 이 산은 금천구의 진산(鎭山)으로 관악산처럼 바위산이다. 그래서인지 은비녀, 돌고래, 새, 칼, 주먹, 토끼 등 갖가지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나그네를 반긴다.

▲ 독산교는 서울 8경 후보에 오를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 / 호암산 정상에 있는 직사각형 연못, 한우물


통일신라시대 산성, 직사각형 연못 한우물

이 산에는 많은 사적이 있다. 호암산성은 통일신라 문무왕 12년(672년) 나당전쟁 때 한강과 서해 남양만에서 들어오는 길목을 효과적으로 방어·공격하기 위해 산 정상 부근 능선을 따라 1천260m를 축성한 요새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300m 정도 남아 있다.

한우물〔天井〕은 호암산 정상에 있는 길이 22m, 폭 12m의 직사각형 연못으로 주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산 정상에 있는데도 늘 수량이 변함없고, 항상 맑은 상태로 고여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용보(龍洑) 또는 용추(龍湫)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가뭄 때는 기우제를 지냈고, 전시에는 군사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호암산에 옛 성이 있고, 그 성안에 못이 있어 날씨가 가물면 비 오기를 빌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 선거이(宣居怡) 장군이 이곳에 진을 치고 행주산성의 권율(權慄) 장군과 합세해 왜군과 싸우면서 이 우물을 군사용수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연못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보수를 하기 위해 발굴한 당시 신라시대에 만든 연못이 지금 연못 밑에 묻혀 있었고, 그 위에 어긋나게 축석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호암산성과 더불어 사적 제343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호암산에는 시흥계곡, 송진 냄새가 그윽해 마음과 몸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길, 약수터가 곳곳에 있어 휴식 공간과 등산로로 명성을 더하고 있다. 금천구는 특히 작년에 시흥계곡에 덮여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벗겨내고 자연석을 깔아 자연형 물 순환 생태 계곡으로 복원함으로써 도롱뇽을 비롯한 각종 희귀종이 서식하는 청정 구역으로 살려놓았다.


▲ 금천구 야경


금천의 명소는 역시 안양천

금천의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하지만 금천의 명소는 역시 ‘옷깃 금’ 자의 유래가 된 안양천이다. 안양에서 금천과 광명을 양쪽에 두고 영등포와 양천을 끼고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 하천은 한동안 오염과 범람의 대명사였다. 2008년 대대적인 안양천 제방 정비 공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금천(衿川)’으로의 명성을 되찾았다. 가을이면 안양천에는 각종 겨울 철새가 몰려든다. 생태 복원을 위해 심어놓은 갈대밭의 수변 공간이 운치를 더하고, 쇠오리·청둥오리 등 겨울 철새가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부 철새는 아예 터를 잡고 눌러앉았다. 그 사이로 왜가리, 백로가 한가로이 거니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물억새, 코스모스 등 각종 풀꽃도 볼거리를 더한다. 특히 독산교와 보도교 사이는 2007년 서울시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서울 8경 후보에도 올랐을 정도로 경치가 그만이다. 1978년 개통한 남부순환로가 동서를 따라 구로구, 관악구와 경계를 이루고, 남북으로는 광명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경부철도가 나란히 지나며, 고속철도 광명역을 지척에 둔 서울 남서부 교통의 요충지 금천. 칙칙한 공단에서 화려한 패션·IT 문화 벨트로 변신 중인 금천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도시다.


+ 주민과 함께하는 금천구

금천구는 공단이라는 칙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민이 친근한 이웃으로 화합하도록 축제를 열기도 한다. 서울에서 벚꽃이 가장 빨리 개화하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매년 4월 중순 금천구청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이르는 3.1km에 총 639그루의 벚나무를 심어놓은 기찻길을 따라 ‘금천하모니 벚꽃축제’를 연다. 9회째인 올해는 4월 11~13일에 열렸다.

이 행사는 각종 체험 등 주민 참여 주도로 열린다. 벚꽃 향기 아래 주민이 더 이상 객이 아니라 축제의 주인공으로 꾸며가도록 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1년 ‘구민 하모니 오케스트라 기록 도전 콘서트’에는 주민 710명이 단원으로 참여해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오케스트라 연주하기’ 한국 기록을 세웠다. 그런가 하면 패션 IT 문화 존에선 매주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 4시에 거리 공연을 상설 진행해 그 자체가 패션 타운의 확실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글 윤재석(언론인) 사진 나영완 일러스트 문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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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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