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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흐르는 물길 따라 쉴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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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6코스 안양천(석수역~가양역)


안양천은 의왕, 군포, 안양, 부천, 광명의 높고 낮은 산들에서 흘러나온 여러 개울들이 모여 서울로 흘러들어온다. 서울에서는 금천, 관악, 동작, 구로, 양천, 영등포, 강서구 등이 모두 안양천의 유역이며, 한강의 지류 가운데 중랑천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석수역에서부터 가양역까지 이어지는 둘레길 6코스는 줄곧 안양천 물길과 함께 걷는다. 물이 흐르는 대로,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시간에 몸을 맡기고 겨울 천변을 따라간다.

서울 남서부 지역의 대동맥인 안양천은 중랑천 다음으로 규모가 큰 한강의 지류다.



물길 따라 서울로 흘러들어온 사람들


안양(安養)은 극락이나 서방정토와 같은 뜻이다. 마음 편히 몸을 쉴 수 있다는 그곳. 고려 태조 때 삼성산에 들어선 절집 안양사로부터 안양이라는 지명이 생겨났고, 안양천은 그 땅을 가로질러 유유히 흘러온 물길이다. 지금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김중업박물관 자리에 천 년 전 안양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주춧돌들이 남아 있다.


둘레길 6코스는 석수역에서 안양천 둑방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둑방 아래 둔치로 길게 이어진 자전거길과 갈대밭 너머 물길을 건너면 광명시 소하동이다.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1969>에 나오는 “방죽에서 나는 한참 기다렸다. 가을밤의 어둠 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츄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중략)” 같은 이야기들이 천변에 무성한 풀들처럼 자라던 동네. 공장으로 가기 위해 안양천을 건너다닌 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방죽에서 누이를 기다리던 소년은 유고 시집만 남기고 떠났지만, 그 또래 사내들은 초로의 가장이 되었다. 


어린 누이들이 밤낮없이 불을 밝히던 구로공단은 이제 가산디지털산업단지가 되어, 이름뿐 아니라 지역 이미지도 바뀐 지 오래다. 죽어서 떠오를 물고기라도 있으면 반갑다고 할 만큼 오염이 심했던 안양천에도 물새들이 자맥질하고 있다. 젊은 시절 차비를 아낄 목적 말고는 좀처럼 걸을 일이 없던 이들도 이제 살을 빼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부지런히 천변을 따라 걷는다. 물길 따라 그렇게 세월이 흐른 것이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안양천 둘레길 구간의 겨울 풍경



금천 한내를 따라 철따라 꽃길이 이어진다


금천구의 천변 풍경은 시흥동, 독산동, 가산동으로 이어진다. 한강 이남의 서울이 모두 영등포구였다가 구로구(1980년)와 금천구(1995년)가 분구 되고 안양천 너머는 광명시가 되었다. 하지만 금천은 옛날부터 영등포구·구로구· 관악구·광명시 일대를 아우르던 오래된 이름이다. 삼국 시대에는 잉벌노현(仍伐奴縣), 고려 초에는 금주로도 불렸다. 둘레길 5코스에서 만난 낙성대의 강감찬 장군 본관이 바로 금주다.


금천구를 지나는 안양천은 ‘금천 한내’라고도 부르는데, 둘레길은 한내 장미원을 따라 이어진다. 장미원은 석수역에서 금천구청역까지 서해안고속도로 고가 아래 만든 화단으로, 서른 가지 이상의 ‘사계장미’가 봄부터 가을까지 백 만 송이 넘게 피고 진다고 한다. 길 위에는 한겨울인데도 철모르고 피어있는 장미 꽃송이들이 더러 눈에 띈다. 우리들 인생이 비록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는 아닐지라도, 맑은 물 흐르는 천변의 꽃길이라도 자주 걸어보면 어떨까.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줄 마음과 몸의 근육이 차오를 테니까 말이다. 


이어지는 시흥대교에서 철산교까지도 이름난 꽃길이 기다리고 있다. 시흥동 ‘벚꽃십리길’과 나란히 둘레길에도 벚꽃길이 이어진다. 겨울 나목들 사이로 걸으면서, 봄날 그 곁을 지나는 전동차 소리에도 파르르 몸을 떨며 꽃잎을 쏟아 놓았을 꽃길을 떠올려본다. 연분홍 꽃비가 쏟아질 때 다시 올 수 있을까. 기약 없는 다짐을 나뭇가지에 노란 손수건처럼 걸어두고 걸음을 재촉한다.


둘레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는 빠르게 달리는 철길과 자동차전용도로가, 왼쪽으로는 유유자적한 자전거길과 물길이 흐르고 있다. 하류 쪽에는 김포공항으로 들고나는 하늘길까지 머리 위로 겹쳐진다.


천변으로 난 길에는 막힘이 없지만 속도만이 미덕인 길 위에서는 종종 정체와 사고가 일어난다. 장미와 벚꽃으로 단장을 한 둘레길이지만 철길 안전사고 경고 표지판이나 서부간선도로의 정체된 차량들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걸어야 한다. 그러나 왼편으로 흘러가는 안양천 물길과 둔치의 사람과 자전거는 경쾌한 리듬을 타고 앞으로 나아간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향해 빠르게 직선으로 나아가는 길이 매사 효과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오직 두 다리의 힘만으로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묵묵히 일러주는 것 같다.


왼쪽) 오목교에서 목동교에 이르는 안양천 주변은 철새보호구역으로 겨울 탐조 여행 코스로 인기가 있다. 오른쪽) 목동 아이스링크와 종합운동장 앞쪽으로 안양천이 흐르고 있다.



목감천과 도림천을 만나 깊고 넓어지는 물길


18km에 이르는 안양천 코스의 중간 지점에 있는 구일역 앞에서 둘레길의 쉼표와도 같은 스탬프를 찍는다. 구일역은 1995년 안양천철교 위를 지나던 경인선 구로역과 개봉역 사이에 만든 새 역으로 구로1동에서 이름을 따왔다. 구일역 너머로는 2015년 11월에 문을 연 고척스카이돔의 은빛 지붕이 저무는 햇살 아래 반짝거리고 있다. 구일역 역사가 있는 안양천철교 아래쪽으로는 시흥시 목감동으로부터 흘러온 목감천과 안양천이 만난다. 지금까지 광명시와 서울의 경계를 따라 북쪽으로 흘러온 안양천은 목감천과 합류 하면서부터 천변 양안 모두를 서울의 품 안에 두고 흐른다. 


이내 깊고 넓어진 물줄기는 고척교와 오금교를 지나고 신정교에 다다라 관악산에서부터 흘러온 도림천과 만나면서 다시금 크게 몸집을 불린다. 둘레길은 도림천 합수부를 지나면서 ‘영등포 수변둘레길’과 일부 겹쳐진다. 지나온 구로구 구간에서는 ‘구로올레’와 포개지기도 했다. 안양천의 둘레길은 이처럼 여러 자치구의 이름난 길과 길 사이를 조각보처럼 잇다보니, 중간중간 둑방 위쪽과 아래쪽으로 여러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흙길에서부터 우레탄과 아스팔트 포장도로까지 지나온 길의 표면도 다양하고, 벚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플라타너스 등 줄지어 늘어선 길가 가로수의 표정도 자치구마다 변화무쌍하다. 도림천 합수부를 지나자 물길도 둔치도 세력이 불어나고, 천변의 아파트와 빌딩들 키도 훌쩍 높아졌다. 집 문을 열고 나가 바로 산책할 수 있던 개울에서 일부러 나들이 삼아 찾아가야 하는 곳으로, 천변에 대한 심리적 거리도 조금 멀 어지는 느낌이다. 


양천구 목동과 영등포구 영등포동 사이 고수부지에는 물놀이장, 눈썰매장, 인라인스케이트장 같은 놀이시설부터 소규모 축구장, 야구장 같은 체육공원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과거 안양천이 서울 남서부 공장지대 를 움직이는 산업의 동맥이었다면, 지금은 시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에 꼭 필요한 숨길처럼 보인다. 쌀쌀한 날씨에도 천변에는 방한모와 마스크를 쓰고 걷는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왼쪽) 버드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영등포 수변둘레길과 겹쳐지는 안양천 둘레길 구간. 오른쪽)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서 멀리 둘레길 7코스 시작점인 가양대교가 보인다.



소금배가 드나들던 곳에서 한강과 만나다


오목교를 지나면서 물길은 동쪽으로 급하게 물굽이를 튼다. 안양천 건너편에 목동아이스링크와 종합운동장이 보 이기 시작하면 저 멀리 북한산 산줄기도 눈길에 들어온다. 한강이 멀지 않았다는 기별이다. 목동교를 지나면서부터는 물길이 다시 서쪽으로 틀어지기 때문에 북한산은 한강에 다다라서야 다시 만날 수 있다.


금천구 시흥동에서 기아대교를 시작으로 그간 지나쳐 온크고 작은 다리들이 이정표처럼 길안내를 해왔다. 이제 남은 다리는 한강을 목전에 둔 양평교, 양화교 그리고 올림픽대로와 이어지는 염창교뿐이다. 이름에서부터 한강으로 이어진 먼 바다의 냄새가 묻어나는 다리들이다. 양평교와 양화교 모두 조선시대 3대 나루터 가운데 하나였던 양화나루에서 비롯되었고, 염창교는 서해안 염전으로부터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을 보관하던 창고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서울로 올라오던 소금배는 천변의 ‘누이와 소년’들보다 아득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어둑어둑 이내가 깔리고 물길 위로 흔들리는 불빛들이 강물에 스며들 무렵 드디어 한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둘레길 3코스에서 광진교를 건너며 마주친 강물을 안양천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분명 같은 강물인데도 광활한 바다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탁 트인다. 천변을 따라 한 방향으로 계속 걸어왔을 뿐인데도 한강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난 물줄기들이 한강으로 모여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유역을 가진 한강변에 팔도 사람들이 다들 어울려 삶을 밀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강 건너에는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쪽의 우람한 산줄기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어느덧 가양대교에 도 무지갯빛 불이 켜졌다. 저문 강물 위로 서울의 불빛들이 출렁인다. 둘레길 6코스는 한강을 따라 가양대교를 향해 조금 더 이어지다가 염창나들목에서 황금내근린공원으로 나와 가양역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강물은 서쪽으로 계속 흘러간다. 강물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바다가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 의 탐하지 않는 삶>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등을 펴냈다.


글 김선미 사진 나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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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흐르는 물길 따라 쉴 곳을 찾아서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1-12
관리번호 D0000028036479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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