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5년 전 6월 서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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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서울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중 6월의 가장 아픈 기억은 6·25전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5년 전 6월......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우리가 이를 되돌아보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Part1. 전쟁경과함께서울(새창)

Part1. 전쟁경과 이미지 설명

6·25전쟁은 작전명 ‘폭풍’과 함께 시작되었고 작전명처럼 한반도를 순식간에 폭풍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습니다.

전쟁경과
  • 1950년6월25일 6·25전쟁 발발
  • 서울함락 1950년6월28일-(관련사진설명: 동대문에서 종로방향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 서울수복 1950년9월28일-(관련사진설명: 중앙형 태극기 게양)
  • 1.4후퇴 1951년1월4일
  • 서울재탈환 1951년3월15일 - (관련사진설명: 서울시청 앞에서 태극기와 유엔기를 들고 행진하는 국군)
  • 정전협정체결 1953년7월27일 - (관련사진설명: 멸공통일 시민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시민들)

이 외 관련 이미지 : 서울탈환을 위한 시가지 전투, 폭격소리에 귀를 막는 아이들, 전쟁고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PART 2. 서울의 피해 사항

PART 2. 서울의 피해 사항 이미지 설명

6·25전쟁은 대한민국을 처참하게 할퀴었습니다. 특히 수도 서울은 두 차례나 북한군에게 점령되었고 수복 때마다 겪은 치열한 시가전으로 폐허로 남았습니다. 서울의 인명 피해는 사망 약3만, 행방불명, 납치, 학살 등은 10만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고향을 두고 생이별하게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미처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서울 시민들의 대다수는 강제 부역과 징집에 시달렸으며 서울시내 곳곳에는 인민재판이 열리고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붉은 벽보가 내걸렸습니다. 무차별한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주택, 기업, 공공청사 등은 서울을 검은 연기와 잔해로 뒤덮었습니다.

인명피해

사망: 전국 244,663명, 서울: 29,628명. 서울이 전체 사망자의 12% 차지

행불,납치등: 전국 990,968명, 서울: 100,2580명. 서울이 전국의 13% 차지

주택피해

전쟁전: 전국 190,000호, 전쟁후 : 전국 135,000호, 서울: 55,000호. 서울이 전체 주택의 28% 차지

가장 피해가 큰 지역 " 중구" 로 17,000호가 8,000호로 줄었다(출처 : 서울도시계획이야지 - 손정목 교수 저)

도로, 교량등 시설피해

도로 : 50,888미터에 이르는 115개소 시설피해

교량 : 2,365미터에 이르는 60개소 시설피해

상수도 : 50% 시설피해 (출처 : 서울도시계획이야지 - 손정목 교수 저)

공공청사피해

9개 구청(1950년)중 용산,마포,중구청 폭격으로 파괴

277개 동사무소(1950년)중 62개소 소실, 215개 반파 (출처 : 서울도시계획이야지 - 손정목 교수 저)

그 날의 서울에 대한 시민의 이야기입니다.

PART 3. 65년 전을 기억하는 서울시의 기록들미복귀 공무원 해면 발령(1952) 부랑아 접수부(1957) 피난민증

PART 3. 65년 전을 기억하는 서울시의 기록들 이미지 설명

서울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3일 만에 함락되었고 서울시청사에는 서울시 임시 인민위원회라는 간판이 내걸렸습니다. 서울 시정은 중단이 불가피하였으며 1.4 후퇴 이후에는 행정본부를 부산으로 옮겨 서울특별시 부산행정청으로 하고, 전쟁으로 구호를 필요로 하는 부산 거주 서울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배급하는 등의 사무를 개시하였습니다.

미복귀 공무원 해면 발령(1952) – 1952년 4월 대부분의 공무원은 서울로 돌아왔지만 사망, 납치, 행불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이 기록은 복귀하지 못한 공무원을 해면한 당시의 자료이다.

부랑아 접수부(1957) – 당시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이 십 수만에 달했는데 부랑아 접수부는 전쟁으로 생겨난 고아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피난민증 – 전쟁으로 피란 가는 사람들에게 발급한 증명서로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도강증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 상기의 기록은 서울특별시 문서보존소(청도문서고)에 보관되어 있음

이제 우리는...전쟁기념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가보훈처 국립서울현충원

이제 우리는..이미지 설명

2015년 6월 25일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울은 이제 어느 곳을 보아도 65년 전 전쟁의 아픔을 지닌 도시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이 곳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치열했던 6월의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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