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문화유산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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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박물관은 우리나라 상수도의 산 역사다. 박물관 전시실로 변신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 송수실 등 옛 모습 그대로의 상수 시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물의 중요성과 서울시 수돗물 ‘아리수’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장소다.

서울사랑

박물관이 된 최초의 정수 시설
수도박물관은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자리에 위치해 있다. 뚝도아리수정수센터에 상수도로서의 역할을 내주고 이제는 역사와 물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서울 수돗물 통수 100주년을 맞아 개관한 수도박물관은 구 송수실 건물을 이용한 본관, 새롭게 설치된 ‘물과환경전시장’과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외 전시로는 야외 전시장과 완속여과지, 정수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송수실 건물과 완속여과지. 붉은 벽돌조에 박공지붕을 씌운 송수실 건물은 입구에는 화강암으로 된 아치형 포치를 두고 출입문과 창틀도 화강암을 아치 형태로 둘러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기둥을 자세히 살피면 군데군데 파이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 때의 탄흔으로 당시 격전지로서 전쟁의 슬픈 역사까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송수실 건물과 함께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완속여과지는 화학약품 없이 모래를 이용해 불순물을 걸러내고 물을 정수하던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세기 초 건축 디자인의 경향과 공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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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우리나라 상수도 100년사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불과 46세, 일반 백성들은 이보다 못한 35세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 평균 수명이 이처럼 낮았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매일 정수되지 않은 물을 마셔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수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고종 황제 때 드디어 근대식 상수도 시설을 세우게 되었다.
전차와 전기를 우리나라에 공급했던 미국의 콜브란(C.H.Collbran)과 보스트위크(H.R.Bostwick)는 1903년 고종 황제로부터 상수도 부설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따냈다. 콜브란과 보스트위크는 한강에 취수관을 매설하고 콘크리트 취수정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우리가 보유한 기술이 없어 전부 외국의 기술과 설비에 의존한 공사였다. 1906년 8월부터 1908년 8월까지 2년여간의 공사를 끝내고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또는 경성수도양수공장)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1908년 9월 1일, 드디어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에서 생산된 수돗물의 공급이 시작되었다. 1만 2,500㎥의 수돗물을 약 12만 5,000명에 달하는 4대문 안과 용산 일대의 시민들에게 공급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80년대에는 우리나라 상수도 기술의 자립이 이뤄졌으며,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의 수돗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질 좋은 수돗물 ‘아리수’를 천만 서울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글 박차나 사진 남윤중(AZA스튜디오)

문서 정보

근현대 문화유산 답사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28036799 등록일 2016-11-15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서울사랑 제공부서 시민소통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한해아 생산일 2016-07-19
라이선스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