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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구의역 잠실방향 9-4 승강장에 추모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잠실방향 9-4 승강장에 추모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19살 청년이 왜 죽어야 합니까”

지난 일요일,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 속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서 사고가 난 이후 2주가 지났다. 광진구에 위치한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잠실 방향 9-4 승강장 주변은 지금도 김 군을 추모하기 위한 포스트잇과 국화가 뒤덮고 있었다. 한 시민이 남겼을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절규에 가까운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발길을 구의역에서 서울시청으로 옮겼다. 지하 시민청 내 지정된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름과 신분증을 대조하고서야 도착한 시청 대회의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 사건이 주는 무거움만큼이나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토론회가 시작되자 각자 그 무거움을 덜어버리려는 듯 시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12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구의역 사고 해결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

12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구의역 사고 해결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

대학생 기호은 씨는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슬픔과 공감은 국민들로부터만 나오고 정부와 기관은 없는 것 같다”며 “3시간 만에 정리되는 원인 규명이 아니라 얼마가 더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이후 현재 페이스북에 ‘구의역 9-4 승강장’이라는 페이지를 만들고 운영 중인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의 발언도 이어졌다. 그는 이번 사건에 유독 사람들이 추모하는 분위기가 컸다면서 그 이유를 “우리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라

시민들은 각자 생각하는 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이야기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발언권을 신청했다. 오선근(55) 사회공공연구원 부원장은 직접 만들어 온 자료를 전문가 패널들에게 나눠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최저가 낙찰제와 공사기간 단축, 비리의혹 등의 부실시공으로 스크린도어 고장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며 “서비스 생산자와 노조,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까지 함께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를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메트로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노동자는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을 맡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인원이 부족해 1인 작업을 한 경험이 있었고, 대부분이 작업 중 열차에 충돌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겪어봤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는 “지하철에서는 사람이 모자라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모자란데, 두 가지 요구가 만나서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란다”고 서울시장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서울시, 서울메트로, 언론·학계·노동계 관계자 등이 모여 다양한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서울시, 서울메트로, 언론·학계·노동계 관계자 등이 모여 다양한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토론회에서는 주로 서울시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서울시 지하철노조 기술지부 소속의 시민은 “사람 죽이는 외주화 중단하라”는 손팻말을 회의 내내 들고 있었다. 그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 뿐만 아니라 직접 광고판을 없애고 하청업체 직영화에 대한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책임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메트로에서 25년간 일했다는 노동자는 정규직들의 현장 경험이 부족해 예산을 책정하거나 사고 재발 대책을 세워도 매번 실패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무직의 현장 경험을 의무화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토론회에는 특히 지하철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메트로 소속 지하철 보안관(39)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시민은 “현재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지하철 보안관처럼 승진 기회도 없이 박봉으로 일하는 정규직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 해결책으로 말하고 있는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도 그 안에서 차별받을 수 있다”고 정규직의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 있는 시민은 “열차가 다니지 않을 때 점검을 해야 하는데, 야간에 업무를 같이 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며 “정규직이라고 열차에 부딪히면 죽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력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꼭 반영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문제

전문가 패널들은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비정규직 고용 문제와 안전 분야의 외주화 등을 꼽았다. 은수미 전 의원은 우리 사회를 ‘하청 사회’라고 규정지으면서 “2005년 KTX 노동자들부터 시작해 이번 구의역 사고까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라며 “시민들도 동의한 면이 있는 만큼 이를 뿌리 뽑으려면 시민이 주도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안전 관련 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이번 사고는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정과 소득격차, 불평등 문제까지 포함한 경우”라며 “정시에 맞춰 운행해야 한다거나 빠른 운행에 매달리다 보면 그 피해는 결국 약자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의역 사고를 막기 위해 필요한 건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과 시민들의 관심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중지요청권’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서울 곳곳의 안전을 모니터링하는 ‘시민안전감독관제도’도 필요하다”며 “시민들의 관심으로 노동자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시민 스스로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모든 노동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과 상식이 배제된다면, 아무리 기술적인 대책이나 정책들이 많아도 공허한 해결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김 군을 향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라고 공감한다는 사실이 현재 하청과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현실을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방치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이번 토론회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 대한 요구이자 요청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서울시가 노동존중 특별시라는 내용을 발표하고 노력했지만 아직 현장에는 그 철학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전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결심으로 틀을 바꾸고 탈바꿈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연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하고 지켜지고 있는 배차시간과 우리의 편리함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회 말미 한 청년의 발언이다. 사회를 맡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이사는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로 한 편리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출동해 고장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구의역 선로 안으로 향했던 김 군은 열차와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김 군에게, 우리에게 안전은 무엇인가.

앞서 발언을 이어갔던 청년의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휠체어를 싣는 2, 3분 때문에 배차시간을 지키지 못할까봐 휠체어용 저상버스가 친구의 승차를 곤란해 하는 경우가 많단다. 우리에게, 당신에게 편리함은 무엇인가.

“19살 아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커도 아빠처럼 집도 못 사고 조그마한 차도 못 가질 것 같다’고요. 우리는 이제 정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우리의 이런 현실을 물려줄 다음 청년 세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메트로 노동조합 소속의 한 조합원이 한 말이다. 이번 사고가 그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와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걸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도 9-4 승강장 문은 많은 사람을 내려준 채 다시 닫히고 있다

지금도 9-4 승강장 문은 많은 사람을 내려준 채 다시 닫히고 있다

승강장의 문은 그 순간에도 열리고 많은 사람들을 내려준 채 다시 닫히는 움직임을 반복했다. 이번 사고가 또 잊히고 불완전한 대책들로 마무리된다면, 어느 역의 어떤 승강장에 포스트잇과 국화가 놓일지 모른다.

※ 이 기사는 청년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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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배지열 생산일 2016-06-13
관리번호 D000002642650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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