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조선 풍경을 처음으로 그린 화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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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은 산수화를 즐겨 그렸던 화가 중에서도, 처음으로 조선의 풍경을 즐겨 그렸던 화가였다. 다른 화가들이 중국 지역의 명승지나 중국 설화로 전해지는 장소를 상상해서 그린 데 반해, 겸재 정선은 조선, 특히 그 중에서도 금강산과 한양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진경산수화를 통해 담아냈다. 그리고 조선의 풍경을 그려낸 산수화는 여러 화원들의 인기를 끌어, 조선 미술이 중국의 ‘상상도’를 벗어난 진짜 그림을 드디어 마주할 수 있게 했다.

그러고 보니 봄철의 꽃이 신록이 되어 초여름을 맞이하려는 문턱에 와 있다. 멋진 풍경을 찾아 서울을 벗어나는 것도 좋지만, 겸재 정선이 조선 안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듯이 서울 안에도 가득한 봄철의 신록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겸재 정선이 서울 종로구의 옥인동 자락에서만 무려 1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려냈으니 말이다. 지금은 강서구, 양천구로 나눠진 양천현의 관아지인 가양동부터, 서울 종로구의 서촌과 부암동까지, 그의 삶이 담겨있는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양천현감 정선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겸재정선미술관의 전경

겸재정선미술관의 전경

양천현의 관아지인 가양동에는 겸재정선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관아의 터가 있었던 관아지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양천향교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가니 겸재정선미술관이 보였다. 들어가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설명을 해 주신다. 그가 많은 명작을 남긴 곳은 양천현 관아지에서 가까운 뒷산인 궁산이었는데, 그 중에 양천현의 팔경을 정리한 양천팔경첩을 지은 물론, 시인인 이병연과 이 시절부터 교류하기 시작해 평생친구가 되었고, 첫 결과물인 경교명습첩이 이곳에서 나올 정도로 정선의 화풍에 큰 영향을 주었던 곳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

겸재정선미술관의 겸재정선실. 겸재정선의 그림을 먼저 찬찬히 훑고 가기에 좋다.

겸재정선미술관의 겸재정선실. 겸재정선의 그림을 먼저 찬찬히 훑고 가기에 좋다.

직접 그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는 2층의 겸재정선실에는 그가 그렸던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1층의 양천관아실에서는 그가 여러 해 동안 국가의 녹을 받으며 일했던 양천관아지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재미있는 것은 2층에 있는 서울시 지도이다. 서울시 지도에 여러 버튼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정선이 그동안 서울 내에서 그렸던 명소들을 볼 수 있다. 압구정, 동작, 지금의 잠실은 물론 서울 시내 여러 곳이 보이는데, 지금의 풍광과 비교하면서 보는 것이 묘미이다.

`행호관어`를 그렸던 곳. 방화대교 너머로 덕양산이 보인다.

`행호관어`를 그렸던 곳. 방화대교 너머로 덕양산이 보인다.

겸재정선미술관의 3층은 조그마한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면 양천향교 너머로 그가 직접 그림을 그렸던 곳인 소악루와 삼국시대의 성터인 양천고성지로 가는 산책로가 눈에 띈다. 궁산이 야트막한 산인지라, 오르는 데는 잰걸음으로 길어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고성지는 겸재 정선이 금성평사와 행호관어를 그려낸 곳이다.

그의 그림인 `금성평야`가 그려진 곳. 고성지는 그의 `야외작업장`이 되었다.

그의 그림인 `금성평야`가 그려진 곳. 고성지는 그의 `야외작업장`이 되었다.

당시의 한강 하류는 매우 넓어 ‘행호’라는 이명으로 불렸는데,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풍경을 담은 행호관어와, 난지도와 행호의 풍경을 그려낸 금성평사는 지금과 사뭇 비슷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소악루까지는 여기서 2~3분도 걸리지 않는다. 조선 영조때 세워져 양천현령을 지낸 사람들은 물론 여러 문인이 찾았던 소악루는 원래의 ‘세숫대바위’가 있던 위치에서 약간 동쪽인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는 달밤의 소악루를 그려낸 소악후월과 지금의 신촌에 있는 안산을 그려낸 안현석봉을 그려냈다. 지금은 난지도 매립지에 가려져 있지만, 어렴풋이 꼭대기가 보이는 절두산과 안산과 그림을 교차해서 바라보면 그때의 풍경이 어느 정도 펼쳐진다.

산에서 내려오면 서울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자. 막히지 않으면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또 다른 그의 발길이 있다.

북악산, 그리고 인왕산 산기슭을 가득 메운 겸재의 발길

시내로 들어와 부암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자하문고개로 도착한다. 서울성곽의 북서문인 자하문으로 가볼까. 자하문 역시 그의 그림의 풍경이 되어, ‘창의문’을 남겼다.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눈에 띄고, 지금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창의문 아래로 내려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는데, 그 위에 자리 잡은 시인의 언덕 역시 그의 발길이 닿은 대표적인 장소이다. 그는 이른 아침 봄비가 내리는 한양을 바라보면서 장안연우를 남겼다. 자연의 하얀 색깔에 잠겨있는 한양의 장안, 그리고 그 위로 수줍게 솟은 목멱산(남산)이 담겨있는데, 이른 아침 안개가 끼는 날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장안여우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들어올 것만 같다.

그가 장안연우를 남겼던 시인의 언덕

그가 장안연우를 남겼던 시인의 언덕

부암동에서 통인동으로 내려와 통인시장을 지나면 옥인동이다. 옥인동 역시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인데, 군인아파트가 있는 위치에는 그가 말년에 살았던 집터가 있었다. 그는 옥인동 자택에서 말년의 완숙미가 가득한 ‘수성구지’와 ‘인곡유거’를 그렸다. 그의 마지막 그림들에는 그만의 부드러운 느낌이 심화되는, 그런 느낌이 은은히 묻어있다. 잠시 그 그림들을 스마트폰에 열어놓고, 지금의 풍경과 비교해보는 것도 별미이다.

수성동계곡의 북쪽에는 옛 옥인시민아파트의 일부가 보존되어 남아있다

수성동계곡의 북쪽에는 옛 옥인시민아파트의 일부가 보존되어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수성동계곡이다. 수성동계곡은 그가 대표작 중 하나인 ‘수성동’을 그려낸 곳이다. 사실 수성동에는 1970년대 개발 붐을 타고 옥인동 시민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는데, 생태계 복원을 목적으로 철거하여 지금은 겸재 정선의 그림에 맞는 형세로 복원해놓았다. 현재는 인왕산자락길 생태녹색관광 자원화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점점 그의 그림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으니, 앞으로 변하는 모습을 기대해볼만하다.

그가 말년을 보낸 옥인동에서 바라본 인왕산

그가 말년을 보낸 옥인동에서 바라본 인왕산

수성동 아래는 바로 서촌이다. 서촌의 고즈넉한 갤러리, 그리고 조그만 상점을 구경해도 좋고, 통인시장의 별미인 ‘시장표 도시락’과 기름떡볶이를 먹어보는 것도 좋다. 조금만 걸어가면 이번에 궁중문화축전이 한창 열리고 있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까지 닿으니, 가족들과 함께 하루 동안 서울여행하기에 참 좋고, 정선의 그림이 담겨있는 삼청동, 세검정 등 다른 여러 곳도 찾아가봄직하다. 이번 연휴는 그의 그림에 맞게 구름이 낀 날씨가 많다고 하니, 정선의 그림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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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풍경을 처음으로 그린 화가는?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장식 생산일 2016-05-11
관리번호 D000002609354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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