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한번 발 들이면 헤어나지 못하는 헌책방

문서 본문

서울의 오래된 것들 (8) 신촌로 공씨책방

신촌로 공씨책방☞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공씨책방’은 말 그대로 공 씨 성을 가진 공진석 씨의 책방이다. <신춘문예>의 논픽션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정말 책을 좋아했던 책벌레였다. 비단 독서뿐만 아니라 책을 모으는 일에도 열성적이었는데 희귀본은 물론 문학전집부터 전공서적까지 두루두루 수집 목록에 올렸고, 급기야 1960년 초 노점상으로 시작한 책장사는 1972년 경희대 앞에 ‘대학서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내며 근사한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이후 헌책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청계천을 거쳐 광화문 부근의 새문안교회 앞에 책방을 꾸리며 널리 알려졌다.

교보문고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새 책을 파는 서점 옆에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의 헌책방을 낸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는데 그는 새 책과 헌책의 관계를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악어와 악어새로 생각했다. 책을 찾는 독서인들의 발걸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한번만 발을 들여 놓았다가는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는 광화문의 개미귀신굴을 아십니까? 책을 사랑하는 분은 광화문을 지나칠 때 공씨책방을 조심하십시오.’라는 이색적인 문구를 내걸었던 이곳에는 많은 문인들이 찾았다. 박상률, 정호승, 이문재 시인이 독서 토론에 열을 올렸는가 하면 지금은 고인이 된 나운영 작곡가까지 책을 사랑하는 많은 개미들의 지옥 같은 사랑을 받았다.

신촌로 공씨책방☞이미지 클릭 크게보기☞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그의 책에 대한 열정은 독서나 수집뿐만이 아니었다. 헌책방 자체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였던 것 같다. 새로운 책이 들어오면 그냥 꽂아 놓는 것이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넘겨보며 내용을 파악하여 손님들에게 책을 골라주곤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재개발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주위에 새로운 장소들을 물색했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고 애만 태우던 어느 날, 홍제동 문화촌에서 논문 한 꾸러미를 사들고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공진석 씨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책을 안고 쓰러져 책과 함께 마지막을 보낸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은 책방을 운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진 책들을 매각이나 기증할 생각으로 여러 곳을 수소문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을 운명이라 생각한 친척들에 의해 광화문을 떠나 지금의 신촌 부근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그의 조카딸과 처제가 운영하고 있다. 공 씨의 책방이었지만 이제 공 씨인 사람은 없는 셈이다.

신촌로 공씨책방☞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나는 몇 권의 책을 구입했고, 공진석 씨가 살아생전 만들어 발행했던 <옛책사랑>이라는 헌책방 소식지도 하나 받아들고 가게를 나섰다.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책은 두껍지 않았지만, 빽빽하게 글씨가 들어앉은 데다 간혹 한자도 섞여 있어 쉽게 속도가 나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꼼꼼하게 읽은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소식지 읽기는 계속되었다. 문인에서부터 대학생, 버스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책 사랑에 관한 글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발행인이었던 공씨책방의 주인 공진석 씨의 글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그의 글은 투박했지만 맛깔났고, 무엇보다 두터운 박식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푹 빠져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문장에 이르렀고,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나는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에 빠져 있어 고개를 든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는 가을 저녁 풍경이 쉴 새 없이 흘렀고, 책 위에 얹은 손에 비친 가을 햇살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리고 글 읽기의 여운은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신촌로 공씨책방☞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이미지 클릭 크게보기

출처_서울사랑 vol.146(2014_11)

문서 정보

한번 발 들이면 헤어나지 못하는 헌책방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이장희 생산일 2015-12-03
관리번호 D0000024698882 분류 기타
이용조건타시스템에서 연계되어 제공되는 자료로 해당기관 이용조건 및 담당자와 협의 후 이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