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모든 게 엉망’이라고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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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aceyhgo

이것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
나는 그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시인
모든 게 엉망이었을 때도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약물에 의존하려고도
가르침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잠을 자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시를 쓰는 법을 배웠다.
바로 오늘 같은 밤
꼭 나 같은 누군가가 읽을 지도 모를 이런 시를 위해.
--레너드 코헨, <유일한 시(The Only Poem)> 전문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9

모든 예술, 그리고 예술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예술적인 것들은 기실 생존의 기록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질한 흔적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일수록 그 이면은 처절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시,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그림... 그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맡을 수는 없지만 진득한 쟁투의 피비린내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조부박한 세상에서 예술이, 시가, 대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에 빠질 때(이미 너무 오래된 의심이기는 하지만), 문득 레너드 코헨을 듣는다. 읽는다. 들으며 읽는다. 조금은 엉뚱하고 황당하게도, 한국에서 그는 방송 매체에서 야릇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는 〈I’m your man>을 부른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캐나다 퀘백 출신의 대표적인 작가로 먼저 시인으로 이후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노래는 그 다음이었다. 물론 그의 노래는 시나 소설만큼이나, 어쩌면 언어적 장벽이 있는 먼 나라 사람들에게는 시와 소설보다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유대인 카우보이’라는 모순적인 별명을 가진 이들의 계보에 속하는 코헨은 길고 깊은 방황을 했던 사람이다. 청소년기에는 가출해 사회주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가 하면 중년기에는 돌연 티벳의 라마승으로 귀의하기도 했으니, 그를 신비주의적인 음유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이해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하나는, 그가 평생을 바쳐 자신의 ‘유일한 시’를 찾아 헤맸으며 자신의 삶에 ‘유일한 시인’이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모든 게 엉망’이라고 느끼는 삶의 어느 한순간, 그 차갑고 어두운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그래도 우리는 길을 찾아보려 애쓴다. 누군가는 아주 선명해 보이는 멸절의 길,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가하면 누군가는 약물을 통해 몸과 마음을 해체시켜버리는 도피의 길을 택한다. 또 누군가는 종교나 절대에 의존해 자신의 문제를 잊어보려 한다.

그러나 그조차 행할 힘이 없거나 두려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본능에 자신을 던진다. 간단하다. 엉망진창인 삶을 내버려둔 채 자거나 먹는 것이다. 폭식으로 해결될 문제는, 물론 없다. 아무리 잠에 취해도 아침은 온다. 그나마 먹거나 잘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견딜 만한 상태일 테다. 정말로 태산 같은 고민 앞에서는 먹을 것이 목구멍으로 내려가지 않고 피로에 허덕이면서도 잠들 수가 없다. 삶의 덫에 갇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그 순간, 코헨은 시를 말한다. 절망에 대한 응급처방이다. 비록 수술대에 올라야만 궁극적인 문제가 치료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응급처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숱하다.

오늘도 세상에는 무수한 SOS 신호들이 떠다닌다. 그 신호에 감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는 여전히 삶으로부터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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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엉망’이라고 느낄 때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5-11-13
관리번호 D0000024207737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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