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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이여, 영화 <베테랑>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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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10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이 광복절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지난 15일 하룻동안 82만 명 이상을 동원한 것이다. 지금까지 최다 기록은 <명량>의 74만 명이었다. 8월은 그해 가장 기대가 큰 대작들이 정면승부를 겨루는 여름시장의 핵심이다. 그 핵심의 한 복판에서 <베테랑>이 기록을 세운 것은 그만큼 이 작품의 흥행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죽지세로 600만 관객을 넘어서서 천만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큰 기대를 받은 작품이 아니었다. 류승완 감독이 흥행 감독이긴 하지만, 국민적 성원을 받는 천만 감독이기보다는 일부 젊은 관객에게만 지지를 받는 액션 전문 감독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개봉 2주차에 1주차보다 더 많은 관객이 드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액션영화 전문 감독의 작품답게 <베테랑>엔 시원시원한 액션이 등장한다. 거기에 적재적소에 녹아든 코믹코드까지 가세해서 재미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단순한 코믹액션영화였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열기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베테랑>은 재벌 갑질에 대한 분노라는 국민정서를 건드렸다.

유아인이 자기밖에 모르는 재벌 2세로 등장한다. 그는 형제들과 경영권 상속 다툼을 벌이며, 마약파티를 하고, 사람을 사냥개로 위협하며 때리고 맷값을 던져주며, 여배우를 농락한다. 그의 아버지인 회장도 부하직원을 폭행한다. 여기에 열혈형사인 황정민이 맞선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에 관객이 반응하는 것은 이것이 워낙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화물연대 소속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로 때린 뒤, ‘맷값’으로 2천만 원을 준 사건이 있었다. 최철원 전 M&M 대표의 저 유명한 ‘맷값폭행’ 사건이다. 당시에 사냥개로 사람을 위협했다는 의혹도 보도됐었다. 2007년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아들과 싸운 술집 종업원을 용역업체 경호원들을 시켜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재벌가 자제들과 연예인의 환각파티 보도도 있었다. 유아인은 이 모든 사건들을 집약한 캐릭터다.

광복절 주말엔 노트북 파손 사건이 보도돼 <베테랑> 인기에 불을 질렀다. 동아제약 회장의 아들이, 자신의 차량에 무단주차 경고장이 붙자 홧김에 주차 관리실에 있는 노트북을 내리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평소에 얼마나 안하무인이었으면 남의 노트북을 던졌겠느냐며 황당해했다. 그 직전엔 골프장 회장이 캐디를 폭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사건들로 <베테랑>의 리얼리티가 더욱 높아졌다.

요즘 재벌에 대한 국민정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재벌 일가의 부정적인 소식이 계속 보도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엔 ‘막장 롯데 시네마’라고 일컬어진 롯데가 ‘왕자의 난’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재벌의 황제경영, 불투명성, 봉건적 가족주의 등이 문제가 됐다. 롯데가 정부로부터 갖가지 특혜를 받고 컸지만 우리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특히 경영권 다툼을 일으켰던 형제들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예 못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더욱 여론이 악화됐다. 한국에서 특혜를 받으며 한국 사람을 대상으로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한국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한국어에 미숙하냐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줬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비행기 내에서 승무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건이다.

이런 사건들이 개인일탈이 아닌 한국 재벌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구조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회장 일가의 봉건적 경영, 직원과 회사를 자신들의 하인과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 전근대적인 지배구조 등이 우리 재벌 일가들을 안하무인의 현대판 귀족으로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베테랑>은 그 신귀족에 대한 반발이 영화로 표현된 경우다. 재벌은 한국경제를 살릴 일종의 돌격대로 국가가 온갖 특혜를 줘가며 키운 집단이다. 그런 재벌이 서민들 위에 군림하며 신귀족 행세를 한다면 반감이 점점 더 커져 결국 반기업정서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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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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