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우리가 잊었던 역사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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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9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이 개봉 18일 만에 8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흥행을 목전에 뒀다. 흥행불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도둑들> 천만 신화의 주인공인 최동훈 감독과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등 특급 배우들의 만남은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전지현의 액션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스토리가 민족정서를 건드린다는 점이 폭발적인 흥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은 상해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고 친일파 처단 작전에 투입되는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과 광복 70주년으로 국민정서가 고조된 상황이었다. <암살>은 국민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해줬다.

최근 놀라운 사태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가 일본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망언을 했다. 한국이 일본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거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이 발언은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로 터져나와 일본 우익들에게 대대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진짜 놀라운 사태는 그 다음에 터졌다. 한 매체가 이 망언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부적절한 발언이다’ 79.9%, ‘잘 모름’ 12.5%, ‘적절한 발언이다’ 7.6%가 나왔다. 정말 경악할 일이다. 있을 수 없는 박근령의 망언에 동조한 여론이 7.6%나 나온 것이다. 잘 모르겠다며 판단을 못 내린 여론도 12.5%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암살>이 독립운동사를 조명한 것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암살>은 최동훈 감독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우당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에서 오성인 백사 이항복의 자손으로 이항복 이래 정승만 10명을 배출한 조선의 대 명문가이며 막대한 재산을 소유했었다. 이회영은 전 재산을 처분해 5명의 형제를 비롯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들은 헤이그밀사, 의열단, 신민회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관여했으며 특히 3,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독립군 사령관 지청천 장군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생도로 구성된 부대를 구성, 김좌진 장군의 부대에 합류해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 속에선 ‘속사포’ 조진웅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으로 그려졌다. 이회영은 1932년에 뤼순 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했고, 그 외 다른 형제들도 잇따라 목숨을 잃어 해방 후 귀국한 사람은 다섯째인 이시영 선생뿐이었다.

이회영과 그 형제들은 나라가 위급한 상황이 됐을 때 '배운 자, 벼슬한 자, 가진 자'의 처신이 어때야 함을 보여줬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배운 자, 벼슬한 자, 가진 자', 즉 기득권층의 처신은 어떠한가? 상당수가 오로지 자기 한 몸, 자기들 가족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건 아닐까?

어찌 보면 이회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 이름 석 자라도 역사에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숨져간 열사들이 많다. <암살>은 바로 그런 무명 열사들의 희생을 조명한다. 그 항일전사들의 후손은 아직까지 고통 받고 있고, 친일파와 그 자손이 부와 권세를 대물림하는 것이 현실이다. 친일파는 해방 후에 반공투사로 변신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상층부에 똬리를 틀었다. 이들에 의해 친일청산이 방해받고 역사 교육이 무너지니까 박근령 망언 동조자가 7.6%나 나오는 황당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암살>이 이러한 현실을 돌아보게 했기 때문에 관객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나타났다. <암살>을 계기로 이제라도 우리가 희생과 배신의 역사를 제대로 응시하고 청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일본 우익은 우릴 더욱 우습게 볼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진리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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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23192673 등록일 2015-08-12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8-11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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