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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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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3

나영석 PD가 제5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대상을 받았다. 반세기를 이어온 백상의 역사에서 예능 PD가 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전지현, 유재석, 현빈, 고현정이나 유명 한류드라마 등이 TV 부문 대상을 수상했었다. 나영석 PD는 예능 PD로선 최초로 대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는 KBS에서 <일박이일>을 국민 예능으로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박이일>의 성공이 강호동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나영석 PD의 역량을 평가절하 했었다. 그가 KBS를 나와 케이블TV인 tvN으로 이적했을 때 그의 성공가능성을 점친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꽃보다 할배>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케이블TV 예능으로는 이례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아이돌 스타 한 명 없이 중노년 출연자들만으로 거둔 성과였다. 백상예술대상은 이미 지난해에 지상파 방송사들을 제치고 <꽃보다> 시리즈에 예능작품상을 수여했었다.

<꽃보다> 시리즈의 성공으로 입지가 탄탄해진 그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시도할 자유를 얻게 됐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삼시세끼> 시리즈다. 남자 두 명으로 이루어진 고정출연진과 초대손님이 시골에서 밥을 지어먹는 내용이 다인, 극히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삼시세끼> 출연자들도 1회를 녹화할 당시에, 너무 지루하게 흘러간다며 ‘이 프로그램은 망할 것’이라고 공언했을 정도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삼시세끼>에 뜨겁게 반응했다.

그 후 나영석 PD는 이번에야말로 시청률이 안 나올 수 있다며 겨울에 섬으로 가 <삼시세끼> 어촌편을 찍었다. 이것이 tvN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차승원과 유해진이 섬에서 밥 지어먹는 내용이 다인 프로그램인데 말이다! 어촌편 이후 최근엔 강원도 정선에서 <삼시세끼> 세 번째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번엔 첫 번째 시즌에 나왔던 이서진과 옥택연이 다시 등장해 그때 그 집에서 밥을 지어먹는다는 내용이다. 똑같은 출연진에 똑같은 배경, 똑같은 내용인 것이다. 사람들이 식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게 또 터졌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나영석 PD의 성공가도에 찬사가 쏟아졌고 결국 이번 백상예술대상의 대상 수상에까지 이른 것이다.

보통 예능은 강한 자극을 배치해 시청자를 유혹한다. 나영석 PD에게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그가 <일박이일>에 있었던 자극적인 요소를 하나씩 빼나가면서 후속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꽃보다> 시리즈에선 <일박이일>의 복불복 게임, 추격전 등을 뺀 여유로운 여행기를 보여줬고, <삼시세끼>에선 이동성까지 완전히 삭제한 채 시골집 한 곳에서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여줬다. 이렇게 자극을 줄여나가는 나영석 PD의 뚝심도 놀랍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 시대의 정서도 놀랍다. 그야말로 예능의 새 역사라 할 만하다.

나영석 PD가 이렇게 자극 없는 예능으로 승승장구하는 것은 이 시대가 치유와 휴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삼시세끼>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며 안정을 찾는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들려오는 비 오는 소리, 밥 볶는 소리, 출연자들 사이의 정담 등이 시청자에게 휴식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우린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달려왔다.

이것은 속도전식 개발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서울시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시 각 구를 대대적으로 재개발한다는 정책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젠 안정과 휴식을 주는 시정에 호평이 쏟아진다. 개발의 상징이었던 뉴욕이 도심 철도를 휴식공간으로 만든 것처럼 서울도 이젠 도심 고가도로를 휴식공간으로 만드는 ‘역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나영석 PD는 이런 시대정신을 예능에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케이블TV 역사상 최대의 성공과 백상 대상 수상을 가능케 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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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7-01
관리번호 D000002279019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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