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스탠퍼드 입학 소식에 휘청인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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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99

얼마 전 미국에 있는 한 한인 여학생이 하버드 대학교와 스탠퍼드 대학교에 동시 합격했다고 해서 모든 매체가 그 소식을 중요하게 전했다. 그러더니 나중엔 그 모든 것이 여학생의 거짓말이었다면서 이 대국민 사기극 파문을 또 중요하게 전했다.

이 시기는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연기할 정도로 메르스 사태가 긴박하게 펼쳐질 무렵이었다. 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메르스 사태 때문에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매체들은 총리 후보자 검증은 할 시간이 없더라도 고등학생이 미국 일류대에 들어간 소식과 그것이 거짓말로 밝혀졌다는 소식은 반드시 전해야 한다는 듯이 앞다투어 관련 뉴스를 편성했다. 일류대 입시 이슈를 국가중대사로 본 것이다.

그 여학생은 부모와 주변인사들의 과도한 기대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에 자신의 성적과 학업 성과를 과장되게 말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마침내 정신적 안정성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상태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이상적인 자아를 창조해내 그 자아가 정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믿어버림으로서 스트레스 상황을 탈출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국내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조차도 태연히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자기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상태, 자기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상태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 여학생이 그런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기가 바로 모든 시험과 입시에서 최고 성적을 받아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입시 천재라고 말이다.

여학생을 그런 상태로 내몬 것은 당연히 우리 국민에게 유난히 강하게 나타나는 학벌주의였다. 학벌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경쟁과 교육 황폐화는 국내에서도 자살, 10대 폭력, 가정파괴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해외 조기유학을 가 어릴 때부터 명문대 입시만을 인생의 목표로 강요당하며 파편화된 가정 속에서 큰 아이들에게도 심각한 정신적 압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보낸 아버지들은 국내에서 심각한 삶의 질적 저하를 겪는다. 이 모든 것이 학벌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다.

네티즌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해당 여학생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인 것으로 질타한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렇게 개인 윤리만을 문제 삼을 경우에 우린 영원히 학벌주의란 사회병증을 치유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매체들의 분석은 이 사건에 대해 학벌주의를 개탄하는 쪽이다. 그러면서 특히 방송사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있는데, 방송사는 지금 남의 학벌주의를 개탄할 때가 아니다. 이 사건을 국가적 파문으로 만든 당사자가 바로 방송사들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메르스 파문에 총리 후보자 검증까지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이 사건을 큰 비중으로 편성했다. 일개 고등학생의 일류대 입시 소식이 총리 검증보다도 중요한 국가중대사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한 것이다.

우리 방송사들은 이런 식으로 학벌이슈에 대한 극도의 민감성을 보여 왔다. 수많은 방송프로그램에서 입시경쟁을 조장하고 학벌주의를 고취하는 내용을 내보낸다. 쇼프로그램에서 가수를 소개하면서 ‘S대’를 나왔다고 학벌을 강조한다든지, 토크쇼에서 출신대학을 기준으로 출연자들의 계급을 나누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입시강사들을 등장시켜 사교육 열풍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엔 한 고등학생의 일류대 입시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다뤄 국가적 파문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방송사가 입시 ‘초민감증’을 계속 보여준다면 국민의 학벌 ‘초민감증’도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입시, 학벌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인식이 가정 안으로 투영되면 그것이 결국 가정파괴와 아이들 인성파괴로 이어진다. 방송사들은 다른 학부모 학벌주의를 탓하기 전에, 총리 검증도 뒤로 제치고 학생 입시 소식을 중대뉴스로 전한 자신들의 학벌주의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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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스탠퍼드 입학 소식에 휘청인 한국사회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22643648 등록일 2015-06-17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6-16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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