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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한국사회가 또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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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99

메르스(중동호흡기중후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고 한 것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아니다. 메르스 확진자는 인구 오천만 나라에서 (아직까지는) 수십 명 수준이기 때문에 창궐 단계는 아니다. 그럼 무엇이 확산됐는가? 바로 공포와 소문이다. 공포와 소문은 이미 수천만 명에게 ‘감염’된 상태다. 이번만이 아니다. 우리는 비슷한 사태를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이럴 때마다 나타나는 유언비어 엄단 대책도 또다시 등장했다. 왜 우리사회에선 항상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한국은 공적 신뢰가 매우 낮은 사회다. 정부나 공적 정보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크다. 만약 신뢰의 지반이 튼튼한 사회였다면 어떤 돌발 사태나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있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신뢰의 지반이 살얼음처럼 얇기 때문에 조금만 충격이 와도 사회안정이 금방 깨져나간다. 그 깨져나간 사이로 비져나오는 것이 바로 소문이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유언비어 엄단으로 소문확산에 대처하지만 신뢰의 지반 자체를 강화하지 않으면 소문은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한국이 공적 신뢰가 낮은 것은 정부와 기득권층이 국민의 안전이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의 안전을 챙기는 쪽으론 한국의 공적 시스템이 별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만 믿고 있다가는 치명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각자도생하려 발버둥치는 가운데에 소문, 괴담이 창궐하고 정부 불신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 정부는 감염병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느슨한 대처를 보여줬다. 작년 세월호 사태 때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해이한 대처가 질타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똑 같았다. 느슨한 대처와 함께 정부가 속시원히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행태도 똑 같았다. 만약 초기부터 병원정보가 공개되었다면 서울삼성병원에서의 2차 유행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는 비밀주의를 고집했고 이것은 엄청난 불안과 혼란을 초래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은 병원공개 등을 잘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미국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 즉각 병원 정보를 공개해 확산을 막았었다. 메르스 원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보건차관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비밀주의를 고집했고 참다못한 서울, 성남 등 지자체가 나선 후 뒤늦게 공개주의로 선회했다.

한 마디로 긴급 사태에 대처하는 우리 행정이 국민의 기대보다 매우 굼뜨다는 것, 국민의 고충과 요구를 바로바로 반영하지 못해서 불신을 자초한다는 것이 이번에도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독재, 권위주의적 통치시기를 오래 겪었다. 독재는 아래에서 위로 형성된 권력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권력이다. 이때 행정부는 권력을 떠받치는 독재의 통치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즉, 국민이 아닌 통치자의 안위를 위한 행정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에 집착할 때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더욱 강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국민이 아닌 윗사람의 심기만을 살피며 복지부동하게 된다. 권위주의 상황에선 윗사람을 잘 받들어 모시는 데에 특화된 사람들만 출세하고, 국민을 생각하며 소신 있게 나서는 사람들은 좌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고착되면 결국 어처구니없이 답답한 행정구조가 형성된다. 그것이 평시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긴급한 사태가 닥쳤을 때 민낯을 드러내는데, 세월호 사태 혹은 메르스 사태가 그런 작용을 한 것이다. 정보를 움켜쥐고 통제하려는 비밀주의도 권위주의 통치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메르스 사태를 우리 사회에 투명하고 민주적인 리더십이 형성되는 계기로 삼아야 행정 신뢰성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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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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