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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보다 오래된 수산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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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날 장작불 지펴가며 상인들이 추위를 녹이는 모습으로 유명한 곳, 바로 서울 중구 중림동에 자리 잡은 중림시장이다. 새벽시장으로 진가가 높은 이곳에, 한 가지 중요한 설명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중림시장은 조선시대의 난전 중의 하나인 ‘칠패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중림시장의 출발이 된 `칠패시장터` 표지석

중림시장의 출발이 된 `칠패시장터` 표지석

‘칠패시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이다. 남대문 앞을 지나가던 중 우연찮게 염천교를 다 못가 위치한 ?건물 앞에 세워진 ‘칠패시장터’라는 표지석을 보게 되면서다. ‘칠패’는 조선시대 난전 중의 하나로 지금의 서소문 밖에 열렸던 시장을 일컫는다. ‘칠패’는 18세기 전반기에 이현(梨峴 배오개), 종가(鍾街 종로)와 함께 서울의 가장 큰 상업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미곡·포목·어물 등을 비롯한 각종의 물품이 매매되었는데 그 중에서 어물전(魚物廛)이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했다. 주로 한강 연안의 마포(麻浦), 서강(西江)을 거쳐 들어오는 곡식이나 생선이 서소문을 거쳐 이곳에 모였는데, 특히 여러 가지 생선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경성수산시장’으로 광복 후에 다시 ‘중림시장’으로 이름을 바꿔 달며 자리를 지켰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유래 깊은 중림시장을 지난 일요일 선뜻 찾아가 봤다. 중림시장은 전철 5호선 충정로역에서 가깝다. 오후 3시 쯤 당도하니 이미 장은 파했고 거리는 한산했다. 그렇지만 시장터에는 해산물을 넣었던 스티로폼 상자가 가게마다 겹겹이 쌓여 있었고, 짭조름한 갯내음이 장터 바닥에 아직 질펀히 깔려 있었다.

시장 주변으로 가보니 아침에 다 팔고 난 스티로폼 상자가 보인다

시장 주변으로 가보니 아침에 다 팔고 난 스티로폼 상자가 보인다

중림시장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약현성당 입구에 이르는 도로변 짧은 구간에 형성이 돼있어 “여기가 정말 시장이 맞아?”하고 되물을 정도다. 더구나 주요 품목인 해산물을 취급하는 어물전은 아침 출근길 전에 대부분 파장하기 때문에 막상 제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서운함이 클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에도 변함없이 굳건히 새벽 수산물시장으로 자리를 지키며 이어온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장터의 상인들은 동 트기 전 새벽 서너 시에 반짝 서는 새벽시장인 만큼, 조개와 생선 등 해산물의 신선도가 서울시내 대형 수산시장 못지않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펄떡이는 해산물을 푸짐히 넣은 이 일대 음식점의 맛 또한 맛깔스럽기로 일품이라는 말도 함께 곁들였다.

새벽수산시장이 끝난 중림시장은 오후가 되면 다시 한가해진다

새벽수산시장이 끝난 중림시장은 오후가 되면 다시 한가해진다

중림시장에 오면 들러야 할 곳이 몇 군데가 더 있다. 약현성당을 둘러보기에 앞서 시장에 연결되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이 엄호라도 하듯 골목길을 에워싸는 바람에 이 골목길은 한마디로 무풍지대다. 골목길로 들어설수록 자동차 소리며 도시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소음 등이 차단돼 시골 마을처럼 한적하다. 길고양이의 걸음마저 마냥 한가롭다.

시장 골목은 시골 마을처럼 한적하다

시장 골목은 시골 마을처럼 한적하다

골목길을 지나다보니 웬 황토 빛깔의 아파트가 보인다. 아파트의 이름은 ‘성요셉아파트’이다. 느낌으로 알 수 있듯 이 아파트는 근방에 있는 약현성당과 무관치 않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터줏대감으로서 골목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이 아파트는 당초 약현성당에서 성도들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아파트는 곡선 형태의 외양부터가 통상 보는 아파트와는 사뭇 다르다. 이 아파트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아파트는 6층 높이지만 골목을 오를 때마다 층수가 달라진다.

시장 골목과 역사를 함께 하는 `성요셉 아파트`

시장 골목과 역사를 함께 하는 `성요셉 아파트`

낮은 지대의 첫 시작점에서는 6층 건물로 출발해 5층 건물이 되다 4층 건물이 되고 지대가 높은 언덕에 이르러서 3층 건물로 모양을 바꾸는 이런 아파트가 어디 또 있을까? 지대가 낮으면 흙을 돋우고 굽은 지형은 가차 없이 직선으로 깎아 하나같이 판박이처럼 찍어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파트와는 많이 다른 형태다. 어쩌면 열악한 지형 상 도리가 없어 택한 건축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굽은 골목길 따라 함께 물결치며 자연에 제 몸을 맞추고 있는 이 특이한 아파트는 볼수록 착하다. 그래서 처음 보는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아파트의 1층에 식당과 미장원 방앗간 세탁소 등 가게가 들어서 상가를 대신하고 있음도 이채롭다. 가게에 나와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면 골목길 평상에 앉아 음식을 나눈다. 방앗간에 들기름을 짜러 나온 아파트 입주민 황연덕씨는 “아파트라고 하기 보다는 6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가끔 매체에 소개되는 약현성당은 붉은 벽돌건물의 단아한 모습처럼 예쁘장한 이름을 지닌 성당이다. 옛날에 ‘약초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약전현(藥田峴)’이라 불렀고, 이를 줄여 점차 약현이란 지명으로 쓰였다고 한다.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약현성당을 만날 수 있다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약현성당을 만날 수 있다

성당 입구에 있는 표지판에 ‘천주교 중림동(약현)성당 한국 최초의 고딕성당’이라고 적혀있듯 약현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국내 최고(最古)의 서양식 성당이다. 약현성당은 천주교 박해 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과 한국 최초의 벽돌집 성당으로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다. 언덕의 서편 소나무 가지 끝에 해가 걸릴 때 쯤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약현성당은 오전 9시에서 오후6시까지 시민을 위한 쉼터로 녹지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은 서소문공원에서 순교자를 위한 미사도 올린다.

아기자기한 골목이 숨어 있고, 아픈 종교적 역사를 지닌 순교성지와 성당이 있는 이곳 중림시장 일대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보물 같은 곳이다. 서소문 건널목 철길에는 하루 4~5분 간격으로 600여 차례 경의선 전철이 지난다. 건널목이 있어 아날로그적 운치를 더하고 있는 이곳이 최근 서을역고가 공원화 발표로 들썩이고 있다. 새벽시장으로 일찍 아침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이 부디 행복한 생활터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늑장 부리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중림시장, 다음엔 꼭 새벽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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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보다 오래된 수산시장이 있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5-06-03
관리번호 D0000022507622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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