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잊으라’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잊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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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혁신센터 청년허브 추모의 벽에 나붙은 추모의 메모지들

서울시 혁신센터 청년허브 추모의 벽에 나붙은 추모의 메모지들

세월호 1주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또 변해가고 있을까? "잊고 싶지 않은데 빌어먹을, 세월이 세월호를 잊게 한다", "그곳에서는 더 행복하시길,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서울시 혁신센터 청년허브(불광동)의 '세월호 추모의 벽'에 붙어있는 메모지 내용이다. 세월을 따라 사람들은 조금씩 그 날을 잊어 가는데, 오늘도 한 땀 한 땀 단원고 엄마들의 상처를 보듬고 있는 서울의 '뜨개질 자매'가 있다.

뜨개질 수업을 위해 준비물을 챙기고 있는 봉사자 곽정숙

뜨개질 수업을 위해 준비물을 챙기고 있는 봉사자 곽정숙

곽정숙씨(60세, 영등포)의 수요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가족들 아침식사를 챙기고 꽃단장을 마치면 서둘러 집을 나선다. 마포에 사는 언니(곽수자,72세)를 픽업해서 곧장 안산으로 향한다. 손에 든 가방 속에는 뜨개바늘, 뜨개 책과 뜨개용 샘플 옷을 담았고, '자매'의 마음속에는 상처 치유를 위한 간절한 기도로 가득 채웠다. 서울을 떠나 1시간쯤 가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상처와 통증 치유를 위해 설립한 민간주도 심리치유센터 '치유공간 이웃'에 도착한다.

아름다운재단 후원과 성금으로 마련된 `치유공간 이웃` 모습

아름다운재단 후원과 성금으로 마련된 `치유공간 이웃` 모습

'치유공간 이웃'은 주부, 직장인, 어르신, 수녀, 대학생 등 안산 시민은 물론 서울, 의정부, 멀리 전남 순천 등 전국에서 오는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웃치유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센터다. 청소와 음식준비는 물론 심리상담, 한방치료, 뜨개질 및 압화 제작 수업이 있고, 특별히 주말이 되면 '별이 된 아이들의 생일모임'을 갖는 등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별이 된 단원고 학생 중근이의 생일모임(생전의 영상, 사진, 유품 등을 보며 추모)

별이 된 단원고 학생 중근이의 생일모임(생전의 영상, 사진, 유품 등을 보며 추모)

'수자·정숙자매'는 2014년 10월부터 '치유공간 이웃'에서 뜨개질 봉사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40여 명의 엄마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하루 3~4시간 정도 봉사를 계획했었는데 엄마들의 열의가 대단해서 저녁 7시까지 수업하는 날도 빈번해 졌다. "병원에서 주는 진통제가 효과는 있지만 반드시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뜨개질 수업은 과다복용을 해도 전혀 부작용이 없고 신비로운 효능만 있는 명약입니다. 뜨개질이야말로 이곳에서 발견한 새로운 '노벨의학상 감'입니다" '치유공간 이웃'의 설립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말이다.

뜨개질을 배우는 단원고 엄마의 진지한 모습

뜨개질을 배우는 단원고 엄마의 진지한 모습

지금도 단원고 희생자 엄마들 머릿속에는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고 한다. 팽목항 말만 들어도 엄마들에게는 또다시 통증이 시작되고 잠을 못 이룬다. 그런데 "뜨개질을 하는 동안에는 그런 고통스런 생각들이 모두 사라집니다. 특히 밤이 되면 아이 생각으로 잠 못 들고 가슴이 아린데, 이 때 뜨개질만한 약이 없는 것 같아요" 자매로부터 뜨개질은 배운 단원고 엄마 김영숙(가명, 47세)씨의 말이다. 그래서인가 뜨개질 수업은 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이들 '자매'는 엄마들 통증 치료의 명의(名醫)로 통한다.

수자·정숙자매의 뜨개질 봉사활동 모습 (위) 치유공간 이웃, 쌍용차 와락 (아래)

수자·정숙자매의 뜨개질 봉사활동 모습 (위) 치유공간 이웃, 쌍용차 와락 (아래)

이들 '자매'는 사실 2011년 10월부터 쌍용차심리치유센터인 '와락'에서 뜨개질 봉사를 시작했다. 여기서 만난 정혜신 박사가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치유센터를 안산시 와동에 설치하면서 '뜨개질 봉사'를 자원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밤낮없이 뜨개질을 하며 엄마들이 생산해 내는 목도리, 조끼, 모자 등은 아이들을 사랑해준 고마운 분들에게 돌려주는 선물이 된다. 선물 받은 이들은 아이들을 더 깊이 기억하게 되고 그 마음은 다시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된다. "한 사람의 엄마라도 우리가 필요하다면 끝까지 봉사를 계속할 거예요" '수자·정숙자매'의 다짐은 확고하다.

치유공간 이웃을 찾은 사람들의 신발이 신발장에 가득하다

치유공간 이웃을 찾은 사람들의 신발이 신발장에 가득하다

"사람들이 위로를 한다며 '잊으라'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잊어지나요?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것이 더 좋겠어요"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엄마들의 말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일은 단원고 유가족에게 단 하루도 지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뜨개질을 하는 순간만은 죽음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치유공간 이웃'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것은 휴지라고 한다. 상담실의 휴지는 이틀에 한 통 꼴로 교체해야 하고, 센터의 이곳저곳에도 휴지통이 널려 있다. 언제쯤 휴지가 필요 없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수요일마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단숨에 내려가는 '뜨개질 자매'는 '별 나라로 봄소풍' 떠난 단원고 아이들이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보낸 천사(天使)와도 같았다.

단원고 엄마들이 짠 뜨개작품들

단원고 엄마들이 짠 뜨개작품들

■ 세월호 유가족 심리치유센터 '치유공간 이웃'
○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764-13 홍원빌딩 3층.
○ 연락처 : (TEL) 031-403-0416,0417 (FAX) 031-414-0416
○ 사이트 : www.이웃.kr (치유공간 이웃)
○ 교통편 : 지하철 이용 4호선 한대앞역 1번출구에서 101번 버스 이용, 와동주민센터에서 하차 또는 4호선 안산역 1번 출구에서 101번 버스 이용, 와동체육공원사거리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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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라’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잊어지나요?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최용수 생산일 2015-04-15
관리번호 D000002201953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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