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작은 시냇물의 이 명징한 `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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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yoofoto

나는 작은 시냇물과 같다.
깊지 않기 때문에 맑다.
--볼테르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8

온갖 어렵고 무거운 관념어를 총동원한 문장이라고 해도 모두 그만큼 중요한 뜻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때로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고 무거운 의미가 전혀 없음에도 곱씹을수록 어려워지고 돌이킬수록 무거워지기도 한다. 볼테르의 이런 말과 같은 것들이다. 듣는 순간 한번 쿵, 곱새기면서 다시금 쾅, 가슴을 치고 머리를 울린다.

근대 철학이나 문학을 읽노라면 너무도 빈번히 그의 이름을 만난다.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라는 본명 대신 필명인 볼테르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철학자이자... 희대의 트러블메이커! 그는 책을 발행하고 성명을 발표했다가 누군가의 분노를 사서 투옥되거나 망명하는 좌충우돌의 일생을 반복해 살았다. 주로 타락한 종교와 부패한 권력,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가득 찬 비관용이 공격 대상이었지만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훑어보노라면 요즘 식 유머로 '모두까기 인형'이라고도 불릴 만하다.

죽기 직전에 성직자가 "악마를 부정하라!"고 주문하자, "이보게, 지금은 새로운 적을 만들 때가 아닐세!"라고 대답했다는 블랙코미디의 대사 같은 유언이 전해오긴 하지만, 살아생전 그에게는 열렬한 추종자만큼이나 사방에 적이 많았다. 이른바 '명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좋게 말하자면 유머와 풍자, 나쁘게 말하자면 조롱과 비아냥거림으로 가득 찬 것이기에 '적'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볼테르는 밉기에 앞서 얄미워 죽을 지경인 상대였을 것이다.

그는 권위를 혐오했기에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짐짓 경박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짧은 말 한마디로 가벼움과 얕음의 연유를 단번에 해명해버린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사람들이 권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그가 가진(혹은 가졌다고 믿어지는) 무엇의 깊이와 무게 때문이다. 그리고 깊고 무거울수록 공정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볼테르의 비유대로라면, 깊은 물은 그 속을 들여다보기 어렵기에 위험하다. 어떤 폐기물이나 암초가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권위와 권위주의가 분리되는 지점도 이쯤이다.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는 권위주의는 그 시커먼 속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권위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누리려 한다.

하지만 스스로 작은 시냇물이라면, 장강(長江)이기를 굳이 주장하지 않으면, 그 가볍고 얕음으로 도리어 자유롭다. 산골짝골짝을 굽이돌아 흐르며 다른 골짜기에서 흘러온 시냇물들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큰물이 아니니 파고도 높거나 거세지 않아 잔잔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맑고 투명하여 그 바닥에 깔린 조약돌이며 금모래를 남김없이 볼 수 있으니 어린아이라도 무섬 없이 발 벗고 첨벙 들어설 수 있을 테다.

실로 볼테르를 맹공격했던 이들의 주장과 다르게, 그는 다만 "신을 경애하고, 벗을 사랑하고, 적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미신을 경멸하면서" 죽었다. 깊은 강이 되어 혼탁하길 욕심내지 않았기에 작은 시냇물로 고단하지만 맑게 살 수 있었다. 이 명징한 얕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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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냇물의 이 명징한 `얕음`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5-04-03
관리번호 D000002190475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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