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서울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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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포레스트

"매일 큼직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JOURNAL EXTIME)》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7

"비결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씁니까?"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질문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 비결을 알게 되면 제게도 꼭 알려주세요!"

애초에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기만의 뛰어난 방법', 비결은 없다. 다만 모호하고도 신비로운 상상과, 지루하고도 꾸준한 습작과,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속삭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형성하는 데 우선되는 것이 재주나 기술보다 상처와 열망이기에, 무릇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자세하고도 끈질기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미묘한, 그래서 설명하기 어렵고 자기 자신도 미처 모르는 내면을 묘사하기에 천착하기보다는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글로 적어보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사람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흘려보았던 그의 몸피와 옷차림, 표정과 습관적 행동들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어떤 동물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외양과 행동뿐만 아니라 무심코 지나치던 본능과 습성까지 이해해야 한다. 사물을 제대로 그려낸다는 것은 또 어떤가? 그림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빛의 각도와 사물의 위치에 따라 음영과 모양까지도 달라 보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는 데서 한 발자국 더 전진하면, 비로소 그 사람과 동물과 사물의 내력과 의미와 쓸모에 대해 나만이 볼 수 있고 쓸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실로 우리는 사람과 동물과 사물 따위, 우리 바깥의 것들을 대충 본다. 띄엄띄엄 보고 멋대로 왜곡해 기억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여다보겠다고 설쳐댄다. 하지만 제대로 보기 시작하면 마침내 새로운, 그러나 다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낯선 것들이 보인다.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을뿐더러 그것에 대한 '생각이 일어난다'. 생각이 일어나야 '할 말이 생긴다'. 그때 그것을 고스란히 펜으로 종이에 언어로 옮겨 적은(혹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입력한) 것이, 바로 글이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그 기능이 밝혀진 인간의 뇌세포 중 40%는 시각(視覺), 눈으로 사물을 판별하는 일에 쓰인다고 한다. 눈이 진실로 마음의 창이라면, 글이야말로 제대로 보는 데서 시작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 과연 무엇이 보이고, 무엇을 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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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글을 잘 씁니까?"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김별아(소설가) 생산일 2015-03-27
관리번호 D0000021829540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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