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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향도에서 이도향촌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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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향도에서 이도향촌의 시대로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89

과거 산업화가 한창 진행될 무렵엔 이촌향도(移村向都) 문화가 크게 나타났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진입해 산업화의 대세에 동참하겠다는 흐름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이도향촌(移都向村)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젠 산업화에 지친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금 농촌의 한가로운 삶을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귀농 귀촌 가구수가 사상최대인 4만 4,586가구로 나타났다. 2001년만 해도 880가구에 불과했고, 2010년엔 4,067가구였다. 10년 사이에 약 3,000가구 정도가 증가한 셈이다. 이 정도면 거의 정체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그랬던 것이 2011년에 1만503가구로 갑자기 뛰더니, 2012년 2만 7,008가구, 2013년 3만 2,424가구에 이어 2014년엔 1년 만에 37.5%가 증가해 4만 4,586가구로 뛴 것이다.

2010~2011년 즈음에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선 경제적 스트레스가 점점 더 커져갔다. 경쟁의 강도는 날로 강해졌고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으며, 자영업은 위기를 맞았다. 집값이 치솟아 대도시에서 보금자리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가계부채로 이자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더 큰 문제는 희망의 실종이다. 사람은 아무리 현재가 어렵더라도 미래 희망이 있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 수 있는 존재다. 2000년대의 문제는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미래의 희망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었다.

이런 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에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금융위기로 인해 우리 경제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들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2000년대 초까지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자기계발 노력으로 뚫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우리 경제현실에 대한 논의는, 지금 상황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알게 했다.

이제 계층상승의 사다리는 부러졌고, 현재 세대가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계층추락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는 인식이 퍼져갔다. 이때쯤부터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기관에서 ‘당신의 자녀가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식의 설문조사를 할 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늘어간 것이다.

이렇게 미래 희망이 약화되는 가운데에 대도시에서의 생존경쟁은 점점 더 격화됐고,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젠 출세를 위해 아등바등 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놔버리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여기에 더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자녀 아토피 등 환경오염의 문제 등이 겹쳐 이도향촌 문화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귀농 귀촌을 택하는 사람들 1위는 50대이지만, 2위가 40대, 3위가 30대 이하 등 젊은 사람들로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아직 은퇴할 때가 안 된 젊은이들이 대도시에서의 경쟁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즘 이상향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 제주도다. 제주도에서 신혼집을 차린 이효리에게 폭발적인 관심이 나타난 것이나, 만재도 <삼시세끼>의 엄청난 인기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 귀촌을 막연히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시골에 가기만 하면 뭔가 여유롭고 목가적인 삶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충분한 준비 없는 귀농 귀촌은 오히려 삶의 행복도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 일단 귀농 귀촌 관련해서 가족들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원만한 합의 없이 밀어붙이다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거나, ‘기러기 귀농’(아버지 혼자 귀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골에 가서 집이나 농기구 등을 덜컥 사는 것도 금물이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귀농귀촌종합센터 등에 문의해서 사전 준비를 해야만 귀농 귀촌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귀농 귀촌은 결코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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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하재근(문화평론가) 생산일 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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