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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르신들의 '비밀의 숲' 봄 외출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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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치매안심센터, 서울숲에서 야외 치유프로그램 '비밀의 숲' 운영
성동구 치매안심센터 입구
성동구 치매안심센터 입구 ⓒ윤혜숙

3월의 어느 봄날 평일 오전 10시, 성동구 치매안심센터로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출석명단에서 본인의 이름을 확인한 뒤 10여 분간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혈압검사를 했다. 고혈압을 확인한 직원이 어르신에게 “혈압약을 제때 챙겨 드시는지?”를 물어본 뒤 “중간에 걷다가 숨이 차면 바로 얘기하세요”라고 말한다.
어르신과 일대일로 연결된 대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다.
어르신과 일대일로 연결된 대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다. ⓒ윤혜숙

어르신들이 앉아 있는 자리 건너편으로 대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다. 어르신과 대학생의 조합이라니, 오늘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궁금했다. 마침 스크린에서 서울숲을 방문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성동구 치매안심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야외 치유프로그램 ‘비밀의 숲’ 활동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다.
야외 치유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야외 치유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윤혜숙

어르신 한 분이 스크린에 나오는 본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기 저게 나예요”라면서 큰소리로 필자한테 알려준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던 어르신들의 눈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하면서 순간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지난번 서울숲에서 야외 치유프로그램을 체험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들 즐거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필자 또한 덩달아 오늘 진행될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서울숲에서 어르신이 쓸 모자를 나눠주고 있다.
서울숲에서 어르신이 쓸 모자를 나눠주고 있다. ⓒ윤혜숙

서울숲으로 출발하기 전 어르신들에게 쓸 모자를 나눠주었다. 사람들이 많은 서울숲에서 멀리서라도 모자를 쓴 어르신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어서 어르신과 대학생을 일대일로 연결해 준다. 그런데 어르신과 대학생은 초면이 아니다. 지난번 첫 회에 서로 만나서 동행했기 때문에 그간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서울숲으로 향하는 어르신은 대학생과 나란히 걷고 있다.
서울숲으로 향하는 어르신은 대학생과 나란히 걷고 있다. ⓒ윤혜숙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서울숲이 있다. 야외 치유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이세련 직원이 앞장서고, 뒤이어 어르신과 대학생이 한 조를 이뤄서 나란히 걸어간다. 물론 어르신들은 걸음걸이가 느리다. 대학생이 어르신의 보행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걷고 있다.

앞에서 걸어가던 어르신은 “대학생인 내 손녀랑 생김새가 비슷하다. 그래서 손녀를 대하는 듯 무척 반갑다”면서 동행하는 대학생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엔 어르신과 대학생이 만나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기회가 드물다. 그런데 서울숲을 산책하면서 어르신과 대학생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어르신은 대학생과의 만남을 기다릴 정도라고 한다.

서울숲 입구에 들어서니 화창한 봄날의 향연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추운 겨울 동안 움츠려 있었던 나무가 저마다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발길을 멈춘 채 연신 감탄을 연발한다.
어르신들은 동행한 대학생과 계속 대화를 나눈다.
어르신들은 동행한 대학생과 계속 대화를 나눈다. ⓒ윤혜숙

서울숲 방문자센터에 도착하니 (사)숲생태지도자협회에서 나온 5명의 숲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현숙 해설사가 선두에 서서 어르신 일행을 모시고 본격적인 서울숲 산책에 나섰다.

조현숙 해설사는 어르신들에게 “오감을 열어서 따스한 봄의 기운을 담아보면서 걷자”라고 당부했다. 해설사는 서울숲을 산책하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어르신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나무와 꽃들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저 아름답다고 감탄만 했던 나무와 꽃마다 각각 생김새가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사연을 담고 있다. 필자도 귀를 쫑긋하면서 해설사의 말을 경청했다. 봄날에 서울숲을 그냥 산책해도 좋다. 그런데 숲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대학생이 동행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해설사가 서울숲에서 만난 꽃나무를 알려주고 있다.
해설사가 서울숲에서 만난 꽃나무를 알려주고 있다. ⓒ윤혜숙
어르신과 대학생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어르신과 대학생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윤혜숙

서울숲을 산책하는 어르신들의 걸음걸이가 느리고 다소 불편해도 괜찮다. 어르신 바로 옆에는 동행하는 대학생이 있다. 이들은 어르신이 힘들어하면 옆에서 부축해서 걷는다. 또한 걷기 힘들어서 휠체어에 몸을 맡긴 어르신도 있다.

서울숲 중앙에 다다랐을 때 목련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그 아래에 테이블이 놓여 있다. 서울숲을 방문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어르신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한 테이블에 서너 분이 앉았다.
어르신이 예시로 제공된 그림을 보면서 꽃을 그려넣고 있다.
어르신이 예시로 제공된 그림을 보면서 꽃을 그려넣고 있다. ⓒ윤혜숙

이어서 해설가가 테이블마다 예시로 그림을 올려두었다. 어르신들은 그림을 보면서 꽃을 그려 넣은 뒤 색칠했다. 그림을 완성한 어르신은 낚시 놀이를 한다. 낚시줄 끝에 자석이 붙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작은 장난감을 들어 올려서 옮겨놓는 게임이다. 낚시 놀이할 적에 어르신들은 마치 어린 시절 장난꾸러기로 되돌아간 듯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두 가지 체험활동 모두 집중력을 키우고 소근육 발달에 유리한 게임이다.
어르신이 낚시 놀이를 하고 있다.
어르신이 낚시 놀이를 하고 있다. ⓒ윤혜숙

예정된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르신을 따라가면서 취재했던 필자도 오랜만에 화려한 봄날의 정취를 즐겨본 시간이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두문불출하면서 지내야 했던 어르신들은 모처럼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니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다가가서 소감을 묻지 않아도 어르신들의 표정만 봐도 그분들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다들 “서울숲에 나오니 정말 좋다”라는 반응을 보여준다.
어르신들이 해설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해설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윤혜숙

코로나19로 인해 작년부터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센터는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비대면 프로그램을 운영해야겠기에 센터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를 고심하다가 야외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세련 작업치료사는 “센터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서울숲이 있다. 서울숲이라는 자연을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어르신들이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할 기회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관내 한양대학교에 개설된 자원봉사 과정이 있다. 자원봉사 과정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어르신과 동행하면서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대학생이 치매안심센터에 일지를 제출하고 있다. 일지의 내용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아침 메뉴부터 자녀, 손주의 근황, 고향에 대한 소식까지 일상을 소재로 다양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대상을 만나서 기쁘다. 그 대상이 손녀뻘이니 마치 멀리 있어서 자주 대하지 못하는 친손녀를 대하는 듯 자상하고 다정한 모습이다.

어르신들은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치매안심센터까지 나오는 게 쉽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오전 일찍 센터에 나오는 이유다. 어르신들은 센터에서 마련한 화려한 봄날의 외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소풍 가기 전날에 비가 오지 않길 기원하면서 설레는 마음이었듯이 어르신들은 야외 치유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날의 날씨를 살펴보고 있다.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서울숲에서 하는 야외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서울숲에서 하는 야외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성동구 치매안심센터는 오는 10월까지 숲과 산림의 환경요소를 활용한 야외치유프로그램 ‘비밀의 숲’을 운영한다. 치매 대상자와 가족이 함께 참여하며 심신 건강 유지, 인지능력 향상 등 힐링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성동구는 지난 1월 (사)숲생태지도자협회와 치매 예방 및 치유적 환경 조성과 치매 안전망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한 지난 2월에는 치매 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숲생태지도자협회 소속 숲 해설사 20여 명에게 치매 바로 알기 교육을 시행하고, 숲 해설사 배정, 프로그램을 조율하며 야외 치유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이를 토대로 구는 대상자 상태에 따라 계절의 숲, 인지의 숲, 치유의 숲으로 구분해 정상, 경증인지장애, 치매 환자 및 가족을 대상으로 ‘비밀의 숲’ 야외 치유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필자가 동행 취재한 프로그램은 ‘비밀의 숲’ 3개 프로그램 중에서 ‘인지의 숲’이다. 어르신들의 화려한 봄날의 외출은 여름에 이어 가을로 이어질 것이다. 서울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서울숲이 있고, 거기서 체험하는 치유프로그램이 있어서 어르신들의 외출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의 '비밀의 숲'이 있기에 가능하다.

■ 성동구 치매안심센터

○ 주소 :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5길 3 공공복합청사
○ 가는법 : 수인분당서울숲역 5번 출구에서 246m
홈페이지
○ 문의 : 02-499-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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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르신들의 '비밀의 숲' 봄 외출 동행기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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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윤혜숙 생산일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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