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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에 복원된 딜쿠샤, 드디어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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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외국에 가장 먼저 타전했던 앨버트 W.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Dilkusha)가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다. 3.1절에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딜쿠샤를 미리 다녀왔다. 서울 성곽길을 산책하다가 수백 년 된 은행나무 옆 넓은 땅을 발견한 앨버트와 메리 부부가 이곳에 집을 짓고 ‘딜쿠샤’라는 산스크리트어 이름을 붙였다.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이 집에서 그들은 1942년 조선총독부가 외국인 추방령으로 부부를 추방할 때까지 살았다.
행촌동 언덕의 ‘딜쿠샤’는 권율 장군 집터 은행나무 옆에 세워졌다. 지금은 앙상하지만 저 나무가 보이면 딜쿠샤를 잘 찾아온 것이다. ⓒ이선미
행촌동 언덕의 ‘딜쿠샤’는 권율 장군 집터 은행나무 옆에 세워졌다. 지금은 앙상하지만 저 나무가 보이면 딜쿠샤를 잘 찾아온 것이다. ⓒ이선미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줄곧 미국 정부에 요청하던 와중에 1948년, 앨버트가 세상을 떠났다. 아내 메리는 한국을 찾아 그의 유골을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에 안치했다. 죽어서라도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앨버트에게 한국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뭉클하게 느껴졌다.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의 앨버트 테일러 묘지(2020. 7월) ⓒ이선미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의 앨버트 테일러 묘지(2020. 7월) ⓒ이선미

그들이 떠난 후 딜쿠샤는 거의 방치되다가 한때 공동주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집이 다시 관심을 얻게 된 것은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 T. 테일러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이 집을 찾아내 2006년 한국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66년 만에 찾은 진정한 ‘고향’이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딜쿠샤가 거의 80년 만에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선미
붉은 벽돌로 쌓은 딜쿠샤가 거의 80년 만에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선미

2016년 서울시는 딜쿠샤를 원형 복원하기로 하고, 다음 해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을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했다. 고증과 연구를 거쳐 2018년 시작된 공사가 지난해 12월 ‘딜쿠샤 전시관’으로 완료됐다. 약 80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찾은 딜쿠샤는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1,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 거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다른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한국 생활과 앨버트의 언론 활동 등을 살펴보는 전시실 6곳으로 구성됐다.
앨버트 부부의 서울살이를 살펴볼 수 있는 1층 전시실에 그들의 사랑을 이어준 리투아니아산 호박목걸이가 전시되어 있다. 이 목걸이는 방습과 온도 등을 고려해 2주 후에는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돌아가고 복제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선미
앨버트 부부의 서울살이를 살펴볼 수 있는 1층 전시실에 그들의 사랑을 이어준 리투아니아산 호박목걸이가 전시되어 있다. 이 목걸이는 방습과 온도 등을 고려해 2주 후에는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돌아가고 복제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선미

메리는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이라는 부제를 단 회고록 <호박목걸이>에서 특히 2층 거실은 딜쿠샤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심장부라 할 수 있다고 썼다. 남아 있는 6점의 사진 자료를 참고해 19세기경 제품을 구매해 배치한 거실은 페르시아 카펫과 난로, 여러 의자와 램프 등으로 밝고 아름답다. 기존 제품을 구하지 못한 자수화초도 병풍과 주칠원반 등은 주문 제작해 가능한 1920년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다.
딜쿠샤 안주인 메리가 ‘우리 집의 심장부’와도 같다고 표현한 2층 거실이 화사하다. ⓒ이선미
딜쿠샤 안주인 메리가 ‘우리 집의 심장부’와도 같다고 표현한 2층 거실이 화사하다. ⓒ이선미

앨버트는 미국이 운산금광 채굴권을 얻게 된 후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광산 기술자 가운데 하나였다. 사진 자료들을 통해 당시 광산의 채굴작업 등도 엿볼 수 있다.
앨버트 테일러가 운영한 음첨골 금광 관련 사진들도 볼 수 있다. ⓒ이선미
앨버트 테일러가 운영한 음첨골 금광 관련 사진들도 볼 수 있다. ⓒ이선미

영국인으로 결혼 전 연극배우였던 메리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 금강산을 비롯한 풍경과 조선 사람들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리기도 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안미경 학예사가 메리의 작품인 초상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선미
서울역사박물관 안미경 학예사가 메리의 작품인 초상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선미

딜쿠샤의 역사적 의미

2층 전시실은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행적을 잘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틱한 장면은 3.1운동 독립선언서가 보도되기까지의 상황이다. 당시 메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 브루스를 낳았다. 한 영상에서 브루스가 감회에 젖어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막 태어난 제 요람에, 독립선언서를 감췄답니다.” 앨버트는 3.1운동과 고종의 국장, 제암리 학살 사건과 독립운동가의 재판 등을 취재해 해외로 타전했다. 태평양 전쟁 후 일제는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했다. 앨버트도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풀려났지만 결국 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추방되고 말았다. 딜쿠샤는 그의 자취가 남은 유일한 장소다.
딜쿠샤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에서도 보기 드문 ‘공동벽쌓기’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선미
딜쿠샤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에서도 보기 드문 ‘공동벽쌓기’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선미

딜쿠샤의 건축학적 의미

1923년 건축이 시작된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세운 벽체가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이 건물은 우리나라 근대 건축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동벽쌓기’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방식이 벽돌을 눕혀서 쌓는 데 반해 이 기법은 세워서 쌓으면서 세 겹이나 두껍게 만들어 구조적으로 더 안정되고 단열과 보온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2층의 한 전시실은 천장의 목조 트러스 일부를 노출해 놓기도 했다.

건물 외벽에 있는 정초석에는 구약성경 ‘시편’을 새겨놓았다. 시편 127,1은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라는 구절이다.
딜쿠샤 외벽에 남아 있는 정초석에는 ‘DILKUSHA1923’ 아래 ‘PSALM127,1’을 새겨놓았다. ⓒ이선미
딜쿠샤 외벽에 남아 있는 정초석에는 ‘DILKUSHA1923’ 아래 ‘PSALM127,1’을 새겨놓았다. ⓒ이선미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는 아버지 브루스가 세상을 떠나자 2016년 양화진외국인 묘원을 찾아 할아버지의 무덤에 아버지의 유골을 뿌렸다. 그는 2018년까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유물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해 2018년에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박물관에서 전시를 했지만 이젠 옛집의 공간에서 그 유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제니퍼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유골함을 들고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았다. ⓒ이선미
제니퍼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유골함을 들고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았다. ⓒ이선미

밖으로 나가니 제니퍼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딜쿠샤가 한국인들에게 ‘독립을 더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서양인 유공자들도 기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앨버트와 메리의 손녀 제니퍼가 복원된 딜쿠샤를 찾았다. ⓒ이선미
앨버트와 메리의 손녀 제니퍼가 복원된 딜쿠샤를 찾았다. ⓒ이선미

딜쿠샤 복원은 단순히 한 건물이 새로 단장한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근대 건축물의 복원이며 항일 민족정신의 복원이기도 하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은행나무가 서 있는 행촌동 언덕길을 내려오며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대문형무소와 경교장 등이 지척에 있는 이 길은 우리 역사로 들어서는 길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위해 애쓴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한다. 딜쿠샤는 이제 한국인들의 마음에 ‘기쁜 마음의 궁전’이 되었다.

■ 딜쿠샤

○ 위치 : 서울 종로구 행촌동
○ 운영시간 : 09:00-18: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무료
○ 관람신청: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main.web)에서 사전 예약을 통한 해설 관람
○ 문의 : 070-4126-8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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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에 복원된 딜쿠샤, 드디어 문 열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이선미 생산일 2021-02-26
관리번호 D0000042016031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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