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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용산역'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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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 용산역에서 강제 노역길 올라...
용산역 전경
용산역 전경 ⓒ이유빈

용산기지가 ‘국가공원 1호’가 되어 ‘용산공원’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며칠 전 용산역을 향해 출발했다.

용산역은 1900년에 경인선의 보통역으로 출발했던 만큼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흔적과 함께 문화 향기 가득한 용산역 일대를 걸어보았다.

용산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역 광장 앞이다. 출구 계단에는 ‘메모리 플라워’라는 조형물이 계단을 장식하고 있다.
용산역 출구 계단을 장식한 조형물 ‘메모리 플라워’
용산역 출구 계단을 장식한 조형물 ‘메모리 플라워’ ⓒ이유빈

광장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용산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다. 마른 체구의 남자가 곡괭이를 든 채 서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의 어깨엔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데 자유를 상징하는 듯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사할린 쿠릴열도 등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영문도 모른 채 징용된 조선인들은 낯선 땅에서 강제 노역에 희생되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지나간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되새기고자 2017년 8월 용산역 광장에 세워졌다.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이유빈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자리한 용산역 광장 주변에는 하늘을 찌를 듯 고층 빌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빌딩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시리듯 푸르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용산역 앞에 세워진 이유는 당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용산역에 집결해 열차를 타고 떠났던 장소로서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용산역에 모여 열차를 타고 노역길에 올랐다
일제강점기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용산역에 모여 열차를 타고 노역길에 올랐다. ⓒ이유빈

용산역 가까이에 자리한 '철도회관'으로 발길을 옮기면 회관 정원에 거북이 모습의 석비 한 점이 시선을 끈다. 한 눈에 봐도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 비석은 ‘연복사탑중창비(演福寺塔重創碑)’이다. 비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다시 세워진 연복사 오층불탑의 건립내력이 담겨 있다.

연복사는 고려시대의 큰 사찰로 경내에 5층 불탑이 있었지만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선 태조 때 다시 재건했다. 마땅히 개성 연복사에 있어야 될 이 비가 용산에 머물게 된 데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무관치 않다. 이 비는 당시 일제가 개성을 지나는 경의선 철도 개설과정에서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개성에서 용산역으로 옮겨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된 이 석비가 용산에서 오래도록 방치되다 시민들의 제보로 찾게 된 것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용산 철도회관 정원에 놓인 연복사탑중창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된 석비이다.
용산 철도회관 정원에 놓인 연복사탑중창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된 석비이다. ⓒ이유빈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옛 용산철도병원(등록문화재 제428호)도 용산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적벽돌로 지어진 육중한 모습의 이 병원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용산철도병원’이다. 일제강점기 철도기지로 개발됐던 용산과 역사의 한 축을 이루면서 용산을 상징했던 이 건물은 용산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옛 용산철도병원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옛 용산철도병원 ⓒ이유빈

용산역에서 용산우체국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조금 언덕진 길을 쭉 따라 오르면 ‘왜고개 성지’와 ‘천주교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왜고개 성지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시기에 처형된 순교자들이 묻혔던 성지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총 10분의 순교자들이 묻혔던 곳으로 용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순교 성지이다. 아담한 성지는 개방돼 있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왜고개 성지’와 ‘천주교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는 왜고개 언덕길
‘왜고개 성지’와 ‘천주교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는 왜고개 언덕길 ⓒ이유빈
왜고개 순교 성지는 개방돼 있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왜고개 순교 성지는 개방돼 있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이유빈

이 지역은 조선 시대에 기와와 벽돌을 만들던 와서가 있던 곳으로 ‘와현’ 또는 ‘왜고개’로 불렸다. 중림동 약현성당, 명동성당 건물에 쓰인 붉은 벽돌도 여기에서 구운 것이라고 전해진다.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의 하얀 지붕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다. 이곳에는 현재 국군중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언덕에 자리한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의 하얀 지붕
언덕에 자리한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의 하얀 지붕 ⓒ이유빈

왜고개에서 삼각지역 방향으로 걷다보면 허름한 기와지붕과 칠이 벗겨진 간판이 보이는 작은 노포들이 이어지며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옛 추억을 소환한다. 노포 뒤로는 꽤 오래된 아파트도 보인다.
작은 노포와 오래된 아파트가 보이는 삼각지 일대 거리 풍경
작은 노포와 오래된 아파트가 보이는 삼각지 일대 거리 풍경 ⓒ이유빈

삼각지역이 인접한 거리에는 30년 전통을 잇는 대구탕집들이 들어선 ‘대구탕골목’이 있다. 맛깔스런 대구탕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골목에 들어서면 다닥다닥 붙은 대구탕집 간판들이 서로 원조임을 자랑한다. 1980년대 초에 이 지역에 대구탕 골목이 형성됐으니 한 자리서 30년은 너끈히 문 열고 있는 가게들도 많다고 한다.
대구탕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삼각지 대구탕골목
대구탕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삼각지 대구탕골목 ⓒ이유빈

대구탕골목에서 시원스레 뚫린 한길가로 나오면 ‘화랑거리’가 기다린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삼각지 화랑거리 또한 걸어봄직하다. 삼각지 화랑거리는 용산에 주둔했던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그림과 액자 등을 취급하는 가게들로 전환돼 명맥을 잇고 있지만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던 1960~70년대에는 전성기를 이뤘던 추억의 거리이다.

봄이 움트는 이 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용산역 일대를 여유롭게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삼각지 화랑거리
삼각지 화랑거리 ⓒ이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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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용산역' 일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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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이유빈 생산일 2021-02-23
관리번호 D0000041986224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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