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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 큰 가르침…마곡 후포마을 입구 '2·8공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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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식물원 온실, 식물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후포마을 입구에 2·8공원이 있다.
서울식물원 온실, 식물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후포마을 입구에 2·8공원이 있다. ⓒ최용수

마음의 눈을 감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좌우를 돌아볼 겨를이 없는 바쁜 도심 생활에서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큰 공원이 아닌 마을 어귀의 작은 공원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강서구 양천로 47길 후포마을 초입의 '2·8공원'도 그 중 하나다. 작은 공원이지만 다른 공원에서는 얻을 수 없는 큰 가르침으로 속이 꽉 찬 이 공원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양천향교역 1번 출구를 나와 직진해 300여 미터 전방에서 우측 길로 접어들면 후포마을로 향하게 된다. 서울식물원과 마곡지구 빌딩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오른편 초입 길모퉁이에 '2·8공원'이라는 소박한 표지석이 서있다. 일본 도쿄도 아닌 서울에 웬 '2·8공원'일까?
정면에서 바라본 2.8공원, 중앙에 상산 김도연 박사의 흉상과 유묵비가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2.8공원, 중앙에 상산 김도연 박사의 흉상과 유묵비가 있다. ⓒ최용수

'2·8공원'은 '2·8독립선언'에서 유래했다. 1919년 2월 8일 일제강점기 동경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남녀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사건이 '2·8독립선언'이다. 이 선언은 도쿄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도했다. 최팔용 · 윤창석 · 김도연 · 이종근 · 이광수 · 송계백 · 김철수 · 최근우 · 백관수 · 김상덕 · 서춘 등이 독립단 대표를 맡았는데, 이 중 한 사람인 유학생 김도연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그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억하며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공원 이름이 '2·8공원'으로 붙여졌다.
가양동 후포마을 입구에 있는  소공원, 정비하기 전의 모습이다.
가양동 후포마을 입구에 있는 소공원, 정비하기 전의 모습이다. ⓒ최용수

독립운동가 김도연은 1894년 6월 16일 강서구의 증미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고, 유학 중 만난 최팔용, 이종근 등과 함께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 대표로 활동한다. 1919년 2월 8일 마침내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독립선언문과 결의문을 선포하는데 이는 본토의 3.1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42년 말 경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에 피의되어 심한 옥고를 치른다.
2·8공원 중앙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청백리 김도연 박사의 동상과 유묵비
2·8공원 중앙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청백리 김도연 박사의 동상과 유묵비 ⓒ최용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자 김도연은 초대 재무부장관이 된다. 신생정부의 열악한 재정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산하 공무원들에게 ‘청백리 정신’을 일깨운다. '事貴正直(사귀정직)' 즉 ‘일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정직함이다’며 당시의 시정월보에 휘호를 남기며 고결한 청백리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이러한 그의 독립정신과 청백리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서울시향교재단, 후포경로당, 양천향교 유림, 지역유지 등이 뜻을 모았다. 2020년 11월 초라하게 방치되던 마을 어귀의 소공원을 재정비해 아담한 '2·8공원'을 탄생시켰다. 공원에는 상산 김도연 박사의 흉상과 유묵비(遺墨碑)를 세웠고, 독립운동가로서 청백리로서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기록을 새겨 보존하고 있다.
상산 김도연 박사의 약력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상산 김도연 박사의 약력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최용수

또한 '2·8공원'에는 상산의 기념물 외에도 이 지역의 귀한 역사를 상기시켜 주는 2개의 조형물이 더 있다. 하나는 일문오열(一門五烈) 비석이고, 다른 하나는 '권농일기념비'다. 일문오열 비석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국한 후포마을 황씨 일문 5인의 공덕을 기리는 비다.
일문오열 비석, 후포마을 황씨 일문 5인의 공적비다.
일문오열 비석, 후포마을 황씨 일문 5인의 공적비다. ⓒ최용수

'권농일기념비'는 서울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농정문화의 일단을 추억해주는 희귀한 비석이다. 해방이 되면서부터 일손이 부족한 농촌의 모내기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권농일'이다. 지금은 대기업 연구실 등이 빼곡하게 들어선 마곡지구지만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넘실대던 풍요로운 농촌벌판이었다. 1965년 6월 10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 주민들과 함께 가을의 대 풍년을 기원하며 제 17회 권농일 행사를 진행하였다. 요즘 서울에서 농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상황인데, 이곳 권농일 기념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의 농정문화를 상기해주는 귀한 유적이 될 것 같다.
2·8공원 입구 오른쪽에 제17회 권농일 기념비가 서있다.
2·8공원 입구 오른쪽에 제17회 권농일 기념비가 서있다. ⓒ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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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 큰 가르침…마곡 후포마을 입구 '2·8공원' 이야기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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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최용수 생산일 202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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