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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오래된 골목으로 떠난 서울 동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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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붉게 물든 나뭇잎이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가을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해설사와 함께하는 서울도보관광을 다녀왔다. 이번에 다녀온 코스는 서촌한옥마을코스로 4km 3시간 코스였다. 그동안 서촌을 여러 번 갔었지만 이번 도보관광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곳이 있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촌골목에서 만난 잘 익은 감과 밤송이가 눈길을 끈다 ⓒ문청야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촌골목에서 만난 잘 익은 감과 밤송이가 눈길을 끈다 ⓒ문청야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해 서촌의 오래된 골목골목을 한발짝 한발짝 디뎌서 '통의동 백송터?창성동 미로미로?상촌재?송석원 터?윤덕영 집터(벽수산장)?박노수 미술관?윤동주 하숙집터?수성동 계곡?이상범 가옥?노천명 집터-이상 집'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서촌골목은 670여 채의 한옥과 재래시장, 근대문화유산과 더불어 갤러리, 카페, 공방 등이 어우러져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길을 걷다 보니 길거리가 갤러리 인 듯 보였다. 못 쓰는 미싱 위에 잘 익은 감과 밤송이를 늘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서촌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문청야

서촌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문청야

서촌은 지역적으로 청계천 상류라고 하여 ‘웃대’라고 불렸고, 사대문 가운데 서쪽에 치우쳐졌다 하여 서촌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현대까지 공간적 역사성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과 예술인들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을 열 듯, 골목 하나에 접어들면 조금 전과는 다른 또 다른 시대로 진입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흥미를 유발시켰다. 서촌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일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 하여 최근들어 ‘세종마을’이라고 부르는 창성동 동네 골목 모습 ⓒ문청야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 하여 최근들어 ‘세종마을’이라고 부르는 창성동 동네 골목 모습 ⓒ문청야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던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인왕산 자락이 명승지로 유명해 권문세가들이 별장을 지어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옥계시사(백일장)가 열리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곳이자 근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노천명, 이상 등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맥이 이어진 곳이다.

통의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밑동만 남은 340살의 백송을 만날 수 ⓒ문청야

통의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밑동만 남은 340살의 백송을 만날 수 있다 ⓒ문청야

통의동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밑동만 남은 340살의 백송이 있다. 영조가 왕이 되기 전 살던 곳이며 추사 김정희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통의동 백송은 높이 16m, 흉고둘레 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백송으로 기록되어 있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1997년 7월의 집중폭우로 쓰러지면서 현재는 밑동만 남은 상태이다. 그러나 주변에 백송의 아들 딸 4그루가 자라고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나무가 어릴 때는 푸르스름한 잿빛인 나무껍질이다가 차차 둥글게 벗겨져 하얗게 된다. 우리나라 전통 소나무 잎은 2개인데 백송은 잎이 3개인 점이 다르다.

1920~30대 지어진 탱자나무가 있는 한옥 ⓒ문청야

1920~30년대 지어진 탱자나무가 있는 한옥 ⓒ문청야

서촌의 WHITE HOUSE ⓒ문청야

서촌의 WHITE HOUSE ⓒ문청야

1920~30년대 지어진 탱자나무가 있는 한옥을 보고 리어카 정도 다닐 수 있는 창성동 세종마을 미로미로를 걸었다. 창성동 세종마을 미로미로는 파스텔톤 색감이랑 열매 맺은 식물들이 많아서 아기자기한 멋이 있었다. 한글을 최선의 언어로 여기는 신종교인 ‘세계정교’의 발상지라는 설명이 보였다. 진명여고가 보이고 그 앞으로 온돌의 구들장을 쌓아놓은 집들이 있다. 골목길에 포도나무 넝쿨이 천막처럼 하늘을 덮고 있다. 가다보니 적산가옥으로 추정되는 집도 있다. 또 걷다보니 모과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있다. 해설사는 모과가 못생겨서, 냄새가 좋아서, 꽃이 예뻐서 모과나무에게 3번 놀란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백악관을 가보았냐고 해설사가 질문한다. 아니라고 했더니 눈앞에 백악관을 보여준다. 서촌에 WHITE HOUSE가 있다.

전통한옥 문화 공간인 상촌재 모습. 아래 왼쪽 사진은 온돌의 구들장이다 ⓒ문청야

전통한옥 문화 공간인 상촌재 모습. 아래 왼쪽 사진은 온돌의 구들장이다 ⓒ문청야

상촌재로 들어서니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보인다. 의식주 수업을 하러 온 아이들이란다. 종로구에서 2017년 6월에 개관한 전통한옥 문화공간이다. 장기간 방치되어 있던 경찰청 소유의 한옥 폐가를 2013년 종로구에서 매입해 1년 여에 걸쳐 복원하였다. 19세기 말 전통한옥 방식으로 조성된 상촌재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석원 터 푯돌 ⓒ문청야

송석원 터 푯돌 ⓒ문청야

친일파 윤덕영이 초호화로 지은 벽수산장 건물의 흔적이 3개의 커다란 돌기둥으로 남아있다 ⓒ문청야

길을 건너 벽수산장을 향해 가는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전봇대 옆 좁은 보도 위에 ‘송석원 터’ 푯돌이 있다. 통인시장 후문 앞 정자 건너편이다. 송석원은 서당 훈장 천수경의 집 이름이며 천수경은 이곳에서 중인 13명과 함께 시모임을 결성해 시모임을 활발하게 열었고, 위항문학(委巷文學)이 탄생했다. 이후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이 이 일대 2만평을 차지하고 벽수산장이란 초호화 건물을 짓고 살았는데 그 진입로의 흔적으로 3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남아있다.

현대 박노수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2층 건물은 한식과 양식 기법에 일본식과 중국식이 섞인 독특한 형태의 집이다 ⓒ문청야

현재 박노수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2층 건물은 한식과 양식 기법에 일본식과 중국식이 섞인 독특한 형태의 집이다 ⓒ문청야

박노수 미술관 2층 건물은 1930년대에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어준 집으로 1930년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2층 벽돌집으로 한식과 양식의 건축기법에 일본식과 중국식이 섞여 있는 독특한 형태로 1972년부터 박노수 화백이 소유하다가 2011년 집과 함께 미술작품과 수석 등 총 994점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종로구는 기증 작품을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인 이집을 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2013년 9월 개관했다. 입장료 3천원을 내고 실내 미술작품을 감상했다. 작품에서 파란색의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터치와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미술관 실내는 촬영금지여서 정원만 촬영했다.

윤동주 하숙집 터 ⓒ문청야

시인 윤동주 하숙집 터 ⓒ문청야

수성동 계곡으로 들어서기 전 옥인아파트가 보이는 곳에 ‘윤동주 하숙집 터’가 있다. 종로구 누상동 9번지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1941년 5월에서 9월까지 약 다섯 달간 하숙했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 있던 곳이다. 윤동주는 그때 후배 정병욱과 함께 머물렀는데, 그로서는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아침에는 인왕산 바로 아래 수성동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산책을 할 수 있고 밤이면 하숙집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아했다고 한다.

일부 남아있는 옥인동 아파트와 인왕산 ⓒ문청야

왼쪽으로 기린교가 보인다.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다 ⓒ문청야

왼쪽으로 기린교가 보인다.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다 ⓒ문청야

계곡물 소리가 크다 하여 수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수성동 계곡에 다다랐다. 수성동계곡은 1971년에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를 2010년에 철거하면서 발굴됐다. 과거에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두 개의 물줄기가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인 기린교에서 합류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계곡 초입에 놓인 길이 1.5m 내외의 기린교는 겸재의 그림<장동팔경첩>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기린교는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돌다리로, 통돌로 이루어졌다. 예부터 도성 내 여름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수성동 계곡은 수려한 경관으로 시인묵객들을 꽤나 불러들였던 모양이다. 자연과 도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수성동 계곡에 ‘쉼’이라는 벤치가 있어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이상범 가옥 ⓒ문청야

이상범 가옥 ⓒ문청야

찻상 위에 책 한권 놓여있고 방안으로 들어온 햇살은 창호지 문의 창살도 끌어 들인다. 실내에는 안면도 그림을 비롯해 화백의 그림이 커다란 액자에 걸려있다, 뜰 안 화분에는 소박한 꽃들이 심겨 있고, 작은 장독대가 보인다. 이 집은 청전 이상범(1897~1972) 화백이 1929년부터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3년을 거주한 곳이다.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도시형 한옥이다. 옆에 붙어있는 청전화숙은 1938년 신축되어 작품 활동과 제자 양성에 힘쓴 곳이다. 2005년 등록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노천명 시인이 살던 집은 개조되어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다 ⓒ문청야

노천명 시인이 살던 집은 개조되어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다 ⓒ문청야

인왕산 자락에 누각이 있었는데 누각 위의 동네는 누상동, 누각 아래 동네는 누하동으로 불리린다. 누하동에 1949년부터 1957년까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시 ’사슴‘을 쓴 여류시인 노천명이 거주했던 가옥이 있다. 1957년 3월, 길에서 쓰러져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누하동 자택에서 요양하다가 6월 16일 세상을 떠났던 한옥을 둘러보았다.

일제 말 친일 시를 남기게 돼 인생이 한번 구겨지고, 6·25전쟁 때 피난 가지 못했다가 문우의 강권으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가 평생 부역자로 낙인 찍혀 또 다시 구겨졌던 인생. 누하동 집은 이후 노천명 시인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50년 전통의 중식당 영화루 내부 ⓒ문청야

50년 전통의 중식당 영화루 내부 ⓒ문청야

이상의 집을 방문하려 하는데 점심시간이었다. 50년 전통의 중식당 ‘영화루’ 중화요리 집에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이상의 집을 찾았다.

문학가 이상의 집 ⓒ문청야

문학가 이상의 집 ⓒ문청야

이상의 집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하여 문화공간으로 개방한 곳이다. <날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이상이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와 스물세 살 때까지 20년간 살았던 집이 있던 곳이다. 문학가 이상이 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 터 일부에 자리한 문화공간이다. 이상을 기억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공간으로, 개방시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서촌 골목길 도보여행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역사를 포함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치 서울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촌의 골목길은 느리게 축적된 풍경처럼 보였고, 낡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과 산이 보였다. 각기 다른 시대가 공존하며 느리게 성장해온 서촌 풍경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 쌓인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었다.

서울도보해설관광은 서울의 주요 관광 명소를 서울문화관광해설사의 전문적인 해설을 들으며 도보로 탐방하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하면 미처 몰랐던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어 보는 즐거움에 아는 즐거움까지 배가 된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개인의 경우 관광일 기준 3일전, 단체의 경우 관광일 기준 5일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하다.

▶서울도보해설관광 홈페이지 korean.visitseoul.net/walking-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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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문청야 생산일 2019-10-31
관리번호 D0000038504046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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