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돌' 조선총독부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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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건물에 쓰였던 ‘서울 돌’이 약 100년 만에 돌아와 ‘3·1독립선언 광장’ 주춧돌로 쓰인다.

조선총독부 건물에 쓰였던 ‘서울 돌’이 약 100년 만에 돌아와 ‘3·1독립선언 광장’ 주춧돌로 쓰인다.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3·1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광장의 기초로 쓰인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월 24일과 25일에 걸쳐 ‘돌의 귀환’ 행사를 개최했다. ‘돌의 귀환’ 행사는 충남 독립기념관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로 쓰였던 돌을 여러 장소들을 거쳐 서울시로 돌아오게 하는 프로젝트다.

서울시는 이 돌을 ‘서울 돌’로 등록했다. ‘서울 돌’은 1926년 준공된 조선총독부 건물로 쓰인 돌이었다. 조선총독부와 서울역 건물은 종로구 창신동 채석장의 돌들로 만들어졌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일부 잔재가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관됐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서울 돌’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행사 첫 날인 24일, 서울시는 의미 있는 장소들을 다니며 서울 돌을 운반했다. 오전 9시, 서울시는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 광장에서 ‘서울 돌’을 인계 받았다. 독립기념관에서 출발한 ‘서울 돌’은 경기도 안성 3·1운동기념관 만세광장에서 독립운동가 이덕순 선생의 딸 이인규 선생을,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은숙 선생 옛 집터를 방문했다.

‘돌의 귀환’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이 ‘서울 돌’을 만지며 신기해 하고 있다

‘돌의 귀환’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이 ‘서울 돌’을 만지며 신기해 하고 있다

‘서울 돌’이 만난 두 독립운동가가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덕순 선생은 안성 지역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로,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을 추서됐다.

이은숙 여사는 지난해 광복절 행사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인물이다. 이 여사는 우당 이회영과 결혼해 1910년 12월 서간도로 망명한 후,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직접 국내로 들어와 독립운동 자금을 구하기도 했다.

두 인물 모두 나라 독립을 위해 열심을 쏟은 것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잘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조명하면서 그들에게 감사함을 드러내고자 이곳들을 방문했다”라고 전했다.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에서 진행된 ‘돌의 귀환’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다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에서 진행된 ‘돌의 귀환’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다

오후 3시, ‘서울 돌’은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돌의 귀환’ 행사는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진행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여러 서울 시민들이 환영하면서 서울 돌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 돌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과거를 상징하는 잔재였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식민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독립을 이뤄낸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돌로 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직접 ‘서울 돌’을 만져 보거나 사진을 담고자 했다. 특히, 아이들은 거의 100년 된 돌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면서 신기해 하는 표정이었다.

민족 대표 33인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 터(현재 태화빌딩)

민족 대표 33인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 터(현재 태화빌딩)

하루 동안 서울시청 로비에서 전시됐던 ‘서울 돌’은 다음날인 25일에 서울시 종로구 태화관 터가 있는 태화빌딩으로 향했다. 서울시는 100년 전, 3.1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이 장소에서 ‘돌의 귀환’ 행사와 함께 ‘3.1독립선언 광장’ 조성 선포식을 개최했다.

태화관(당시 명월관)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식을 통해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했던 장소다. 태화빌딩에는 이를 기리기 위한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가 벽에 걸려 있고 삼일독립선언유적지 기념석과 함께 기미독립선언서가 적혀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3.1독립선언 광장’은 3.1독립선언을 기념하고 선조들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드는 시민의 공간이다. 조선총독부의 돌로 쓰인 ‘서울 돌’은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이곳에서 ‘3.1독립선언 광장’의 주춧돌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태화빌딩 앞에 짓게 될 광장은 4월에 착공해 오는 8월에 준공될 계획이다.

‘서울 돌’ 전달식

‘서울 돌’ 전달식

3.1독립선언 광장이 의미 있는 이유가 또 있다. ‘서울 돌’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하얼빈 등 해외 주요 독립운동 10개 지역의 돌도 함께 옮겨 와 조성할 예정이다. 국내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불을 당겼던 사건이 3.1운동이라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계 각국에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널리 알린 3.1운동의 취지를 되살리고 3.1운동에 대한 우리 국민과 해외 교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광장을 조성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눈에 띈 인물이 있었다. 창신동 주민 대표로 참석한 문무현 씨였다. ‘서울 돌’의 고향(?)인 창신동 채석장의 주소가 ‘종로구 창신동 23번지’였는데, 100년이 지난 현재 그 주소에 거주하는 주민이 문무현 씨다.

문무현 씨는 “이 뜻깊은 곳에 3.1운동 기념공간을 만든다는 자체가 감회가 새롭고 즐거운 마음이 생긴다”라면서 “창신동 채석장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서울역을 지은 돌들의 주산지였다. 그 일부가 약 100년 만에 온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서울 돌’을 통해 우리들이 더 일깨워지고 앞으로 더 많은 선각(先覺)이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태화빌딩 한켠에서는 ‘역사 속의 태극기’ 전시가 열렸다

태화빌딩 한켠에서는 ‘역사 속의 태극기’ 전시가 열렸다

선포식 현장이 벌어진 태화빌딩 한켠에는 ‘역사 속의 태극기’가 전시됐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었던 3.1운동, 임시정부,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 속 태극기를 통해 선조들의 조국과 독립, 나라사랑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고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되새기고자 열렸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들과 3.1독립선언서를 선포한 민족 대표 33인의 명언과 글귀도 적혔다.

3.1독립선언 광장 선포를 끝으로 이틀에 걸쳐 진행된 ‘돌의 귀환’ 행사 및 ‘3.1독립선언 광장’ 선포식이 마무리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이렇게 말했다. “식민지 시대는 무생물도 식민지 백성이 된다” 무생물인 돌까지도 일제에 의해 불명예스러운 건물로 오랫동안 쓰였다.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옴으로써 지난 아픔을 씻어내는 상징적인 의미가 됐다. 우리는 지난 아픔과 고통을 이겨낸 민족이다. 그러므로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기록해야 한다. 3.1독립선언 광장은 이를 대표하는 장소로 발돋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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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35664246 등록일 2019-02-27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김진흥 생산일 2019-02-26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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