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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환구단'에서 꼭 봐야 할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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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야경

석조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야경

“오전에 환구단에 임하시어 하느님께 제사하시고, 황제위에 나아가심을 고하시고, 정오에 만조백관이 예복을 갖추고 경운궁에 나아가 태황제폐하, 황태후 폐하, 황태자 전하께 크게 하례(賀禮)를 올리니, 백관이 즐거워하더라. 집집마다 태극 국기를 높이 걸어 인민의 애국지심을 표하며,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얼굴에 즐거운 빛이 나타나더라.”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던 상황을 보도한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자 독립신문(獨立新聞)의 기사 내용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최초로 황제국이 됨을 하늘에 제사 드린 ‘환구단(?丘壇)’은 어디일까? 한파가 계속되는 겨울 한복판,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는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이곳에서 동쪽의 도로를 건너다보면 빌딩 숲 사이에 큼직한 기와대문이 서있다. 대문과 이어진 담장 끝자락에는 ‘돌북’ 형태의 3개의 화강암 안내석이 나란히 놓여있다. 대한제국 탄생의 유서 깊은 장소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2000년 10월 서울시가 조성한 ‘환구단 시민 광장’이다.

돌북 형태의 화강암 안내석 3개가 놓여있는 환구단 시민 광장

돌북 형태의 화강암 안내석 3개가 놓여있는 환구단 시민 광장

환구단(일명 환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말한다. 1897년 고종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설치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원추형 제단을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고종은 황제로 등극한다.

이와 함께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대한제국의 탄생을 국내외에 선포하다. 당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 대등한 자주독립국가임을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후 대한이란 국호는 상해 임시정부에 계승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제국 탄생의 상징이던 환구단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강제로 헐리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이 세워진다. 1960년대 후반 화재로 소실된 철도호텔 자리에 다시 들어선 것이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이다. 환구단은 호텔이 건축되면서 황궁우, 석고, 삼문, 협문 등의 일부 시설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근대사는 알면 알수록 가슴이 아파온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뿌리를 없애기 위해 헐었던 환구단은 호텔의 장식물이 되었다가 지금은 사적 제157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기해년, 황제국이 탄생한 환구단의 흔적을 찾아?시간여행을 떠나보았다.

환구단 정문

환구단 정문

① 우이동에서 이전 복원한 ‘환구단 정문’

서울광장 건너편의 환구단 정문은 원래 황궁우 남쪽인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에 있었다. 1967년 철거된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정문이 강북구에서 40년 만에 발견된다. 우이동의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한 ‘백운문’이 바로 환구단 정문으로 밝혀졌다.

이때 서울시는 다수의 이전 후보지를 검토한 결과 환구단의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인 서울광장 건너편 환구단 시민 광장에 복원키로 최종 결정한다.

2009년 철거된 후 42년 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온 환구단 정문은 앞면 3칸, 측면은 2칸이다. 가운데 칸은 넓고 양측 칸은 좁다.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인 자두꽃 문양과 봉황문을 장식으로 제국의 위엄을 표현한다.

8각의 3층 구조로 보이지만 실내는 하나의 통층으로 이루어진 환구단 부속건물, 황궁우

8각의 3층 구조로 보이지만 실내는 하나의 통층으로 이루어진 환구단 부속건물, 황궁우

② 하늘 신(天神)과 땅 신(地神), 태조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皇穹宇)’

환구단 정문 옆으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골목이 있다. 골목 끝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르니 석조기단 위에 세워진 웅장한 기와 건물이 나타난다. 1899년 환구단의 부속 건물로 축조한 황궁우이다. 외부에서 보면 8각의 3층 구조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통층 건물이다. 이곳에는 천신(天神), 지신(地神)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고종은 태조 이성계를 추존해 태조고황제로 삼고 대한제국의 번성을 염원하며 이곳에 위패를 봉안했다.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연결되는 석조 삼문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연결되는 석조 삼문

③ 황궁우로 나아가는 ‘삼문(三門)’

천제를 지내던 환구단에서 위패를 모신 황궁우로 연결되는 답도(踏道)에는 석조 삼문(三門)이 서있다. 계단에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쌍룡과 법·정의를 뜻하는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들 동물에는 황제의 권위와 법치주의를 향한 고종의 바람이 담겨 있다. 특별히 삼문의 지붕을 낮게 만들어 황궁우로 향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겸손된 마음을 갖게 설계된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삼문의 천정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문(龍紋)이 장식되어 있는데, 조선호텔 커피숍에 앉아 삼문을 바라보면 황궁우의 아름다운 야경이 황홀감을 일으킨다.

계단에 설치된 쌍룡과 해치, 각각 황제의 권위와 법·정의를 뜻한다

계단에 설치된 쌍룡과 해치, 각각 황제의 권위와 법·정의를 뜻한다

④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石鼓壇)’

‘석고단(石鼓壇)’은 1902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석고(石鼓)란 돌로 만든 북을 말한다. 환구단 제사 때 사용하던 악기의 하나를 형상화하여 3개의 돌북을 만들었다.

전체 모양은 둥글고 몸체에는 용문양이 조각돼 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정교한 용의 형상은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의 역동성을 담아낸다.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가 결코 암울하거나 문화적 재능은 쇠퇴한 시기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석고(石鼓)들이다. 조선 말기의 조각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

이 외에도 협문과 석조울타리, 주춧돌 등이 환구단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환구단을 완전체로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예상된다. 이러한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암울했던 대한제국의 유적을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의미 있지 않을까. “만세, 만세, 만만세!” 대한제국 탄생 순간에 외쳤던 벅찬 감동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에는 대한제국의 유적을 찾아 나서보면 어떨까. 황궁우의 야경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에는 대한제국의 유적을 찾아 나서보면 어떨까. 황궁우의 야경

환구단 : 서울 중구 소공로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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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환구단'에서 꼭 봐야 할 4가지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최용수 생산일 2019-01-23
관리번호 D0000035426765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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