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양 교류 기대...'경평축구' 부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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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경평축구' 전시가 있었다

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경평축구' 전시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이던 1929년 10월 8일, ‘경평축구대항전’이라는 축구대회가 역사적인 서막을 올렸다. 기록에 의하면, 운동부 기자 이원용과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최정연이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두 도시인 경성과 평양이 각각 축구단을 조직해 친선 경기를 갖자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축구를 매개로 경성과 평양이 도시 간 선의의 대결을 벌여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으로 요즘 말로 하면 ‘경평 더비’의 시작이었다.

‘경평 더비’는 1929년 10월 8일 경성팀(전경성군)과 평양팀(전평양군)의 첫 대회를 시작했지만 1930년 2회 대회 후 중단되었다. 그 후 1933년에 경성과 평양을 각각 대표하는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창단된 것을 기념해 ‘경성평양대항 정기축구전’이란 명칭으로 재개됐다. 그러나 이것도 1935년까지 열린 뒤 중단됐다.

다행히 ‘경평 더비’는 이후 다른 도시의 축구팀까지 더해져 ‘전조선도시대항 축구대회’, ‘3지방대항 축구전(경성, 평양, 함흥)’ 같은 도시 대항 축구대회로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42년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으로 구기종목을 금지시키면서 모든 대회가 중단됐고, 해방 후 1946년 3월 25일 엄청난 관심과 열기 속에 다시 경기가 열렸지만 이번에는 38선에 가로막혀 다시 열리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제1회 경평축구대항전(전경성과 전평양 축구대항전)이 주최로 1929년 10월 8일 열렸다

제1회 경평축구대항전(전경성과 전평양 축구대항전)이 주최로 1929년 10월 8일 열렸다

그런데 왜 두 도시의 친선경기가 축구였을까? 바로 당시의 엄청난 축구 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축구 열기가 대단하지만, 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자료에 의하면, 축구는 구한말 도입돼 1910년대 전후로 인기가 오르면서 관련 체육단체가 창립되고 각종 축구대회가 열리는 등 축구 열풍이 거세져 ‘축구하면 조선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열린 축구경기에서 조선의 축구팀들이 일본의 축구팀들을 누르고 우승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축구는 일제 탄압에 억눌려 있던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자존심을 일깨우는 촉매제 같은 역할을 했는데, ‘경평 더비’가 성사됐던 것도 이런 분위기 덕분이었다.

실제로 1929년 10월 8일 첫 대회당일 주최자는 사설에서 ‘경평 더비’를 개최하는 이유가 “부지중에 민중적 차원으로 화합하자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부사장 안재홍은 개회사에서 “경기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역량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제는 ‘경평 더비’가 있을 때마다 두 도시 간의 과열을 이유로 대회를 방해하거나 중단시켰고 이를 빌미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대표하는 라이벌 도시였던 경성과 평양은 축구경기를 통해 억눌려 있던 민족정신과 자존심을 일깨웠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대표하는 라이벌 도시였던 경성과 평양은 축구경기를 통해 억눌려 있던 민족정신과 자존심을 일깨웠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축구는 구한말 이후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의 격랑과 결을 같이한다. 이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남과 북이 만나 교류하면서 평화번영의 꿈을 키우는 마당에 지난 일제강점기 억눌린 민족의 자존심을 어루만지다가 생채기가 남은 채 중단된 ‘경평축구’의 부활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평 더비’의 한 축이었던 서울은 ‘경평축구’의 부활을 위해 여러 차례 북측에 의향을 물었다. 2012년 1월 박원순 시장이 신년사를 통해 북측에 ‘경평축구’ 재개를 정식으로 제안했고, 2016년 11월에는 ‘서울-평양 포괄적 도시협력 구상’에서 서울-평양 교류협력사업의 하나로 내년 100주년 전국체전에 북측의 참여와 ‘경평축구’ 개최를 제안하기도 했다.

올해 2월 평창올림픽 때는 북측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지를 밝혔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북측도 ‘경평축구’를 재개하는 것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뿐, ‘경평축구’ 재개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있다.

물론 의도하는 일이 아무리 취지가 좋고 의미가 있더라도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계기와 여건이 필요한 법이다. ‘경평 더비’의 계기와 여건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기, 조선에서 역사·문화·경제·사회 등 각 방면에서 경쟁 관계였던 경성과 평양이라는 두 도시 공간, 그리고 일제의 탄압에도 민족적 단합과 자긍심을 일깨워준 축구 열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경평축구’에 사용되었던 축구공

‘경평축구’에 사용되었던 축구공

우선, 내년을 보자. 내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3.1운동을 계기로 한반도 안팎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 지도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렇게 일제 강점의 역사적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한반도에서 내년은 남북 모두에게 아주 뜻깊은 해다.

실제로 남북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치르기로 약속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억눌렸던 민족의 자존심과 기강을 세워주었던 ‘경평축구’를 함께 치른다면 당시의 시대상에 어울리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다.

그다음, 남과 북을 대표하는 두 도시인 서울과 평양을 주목하자. 서울과 평양은 남북분단 이후 이념과 체제 경쟁의 두 심장부였다. 그러나 이제 남과 북은 기존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이끌 두 주축 도시가 서울과 평양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중추적 역할이 저절로 주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공동번영을 추동할 서울과 평양, 즉 민족경제의 두 심장부가 긍정의 에너지를 태워가며 가열 차게 뛰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 민족의 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을 향한 열정 말이다. 그동안 이념과 체제 경쟁의 전면에 있던 서울과 평양이라는 두 심장은 너무 차갑게 뛰었다. 차가운 심장으로는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의 평화번영과 통일을 달성할 수 없다.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 뜨거운 심장으로 탈바꿈하고, 서로 열린 마음으로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분출하는 열기를 내뿜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경평축구’다. 냉혹한 일제강점기에 억눌리고 얼어붙은 우리 민족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것 중 하나가 바로 ‘경평 더비’였기 때문이다.

내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남북정상은 3.1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합의했다

내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남북정상은 3.1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합의했다

오랜 단절 기간 동안 서울과 달리 평양은 상대적으로 침체를 겪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서울과 평양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사회, 문화, 역사의 측면에서 평양의 명성이 퇴색한 것이 아니고, 또 평양 나름의 특색을 갖추고 지금까지 발전했다. 더구나 그동안 움츠렸던 평양이 다시 도약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있다.

‘경평축구’의 재개는 평양이 서울과 더불어 한반도를 대표하는 도시로서 위용과 자존심을 다시 찾는 데, 나아가 서울과 함께 민족의 공동번영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그 접점을 찾고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와 같이 ‘경평축구’의 부활은 역사적 의미, 공간적 의미,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라는 시대적 의미에서 볼 때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조만간 한반도의 미래를 짊어질 서울과 평양이라는 두 개의 심장이 두근두근 가열 차게 열기를 내뿜을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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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직원기자단 ‘홍당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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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평양 교류 기대...'경평축구' 부활할 수 있을까?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35188854 등록일 2018-12-19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서울시 직원기자단·이현(서울시 남북협력담당관) 생산일 2018-12-18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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