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유적지 ‘청계천’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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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판의 음질을 체험해보세요

빽판의 음질을 체험해보세요

“어렸을 때, 청계천에서 빨간 책이나 빨간 비디오를 구하기 쉬웠어요. 하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 빨간 책과 빨간 비디오가 나오면 무조건 언급되는 곳이 청계천이었다. 여기서 빨간 책과 빨간 비디오는 성인 전용 책과 비디오를 말한다. 청계천이 얼마나 그런 자료들이 성황이었으면 ‘음란물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였다. 심지어 ‘빽판’이라고 했던 해적판을 사고파는 곳들이 청계천에 많았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여 년 전 일이었다. 왜 청계천에서 그런 문화가 형성됐을까. 그 해답을 '청계천박물관'에서 알려주고 있다.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

11월 11일까지?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선 <메이드 인 청계천 :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전시가 개최 중이다.?이번 특별기획전은 청계천이 서울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친 역할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꾸몄다.

1980년대까지도 대중문화는 고급의 반대되는 말 혹은 퇴폐적이거나 조금 가벼운 문화를 포괄하는 단어였다. 그런 의미에서 청계천은 대중문화의 메카였다. 미디어 매체의 복제와 유통, 대중적 소비의 접점을 이뤘던 곳이 청계천이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청계천은 유적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세운상가 주변 지역 상점

세운상가 주변 지역 상점

조선시대 청계천 3, 4가는 서민의 거주 공간이었다. 해방 직전에는 공습 시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빈 터였다. 해방 후 월남민, 이촌향도 한 이주민이 이곳에 모여 생계와 주거를 해결하는 터전으로 삼았다. 군수품 등을 거래하는 암거래시장이기도 한 청계천 3, 4가에 김현옥 시장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판자촌을 정리하고 세운상가를 건립한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지면서 대중문화 매체의 보급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1959년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 A-501이 출시됐고 라디오 방송사들이 개국하면서 라디오 수요가 더 높아졌다.? 또한 TV 수요도 점점 늘어났다. 서울시민의 대중문화에 대한 욕구가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미디어 매체의 생산기지 노릇을 한 곳이 세운상가였다. 특히, 빽판, 비디오테이프, 외설잡지 등의 복제와 유통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청계천박물관에 전시된 ‘라디오 방송 빽판’

청계천박물관에 전시된 ‘라디오 방송 빽판’

해적판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불법으로 복제되어 판매 및 유통되는 음반, 서적, 테이프 등을 말한다. 그중 ‘빽판’은 불법 복제한 LP판을 한정하는 말이다. 은밀히 뒤에서 제작돼 ‘Back’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반복해서 복사하여 해상도가 떨어져서 하얗게 되어 백(白)판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 해적판은 50년대부터 만들어졌고 8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라디오가 성행했던 1960년대는 외국음반을 수입하지 못했다. 라디오로 들었던 노래를 또 다시 듣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그때 만들어진 외국가수 음반이 모두 ‘빽판’이었다. 1970년대에는 원판을 복제한 빽판이 등장했다. 가격이 싸고 심의와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보급이 이뤄진 1980년대는 길거리에서 해적판 테이프를 팔았다. 당시 이런 모습에서 ‘길보드’라는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외 빽판 음반들

국내외 빽판 음반들

해외음반뿐만 아니라 국내 금지 음반 곡들도 빽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정치적인 원인으로 인해 1965년 방송금지곡이었다. 그런데 1966년 일본의 빅터 뮤직에서 제목을 ‘사랑의 빨강 등불’로 변경하고 가사도 일부 수정한 싱글 앨범을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이 앨범의 해적판이 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가 알려졌다.

‘동백아가씨’처럼 금지된 노래들은 꽤 있었다. 이는 긴급조치 제9호가 시행되면서다. 긴급조치의 내용은 정부가 퇴폐스러운 대중예술을 정화한다는 목적이었다. 이러한 풍기문란의 단속으로 대중문화를 위축시켰지만 어두운 시장을 탄탄하게 만들기도 했다. 금지음반은 빽판으로 제작됐고 청계천에서 은밀히 거래됐다. 음반뿐만 아니라 방송, 영화, 만화, 도서 등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여러 영역들에 관한 거래가 청계천에서 정부의 눈을 피해 이뤄졌다.

원본과 빽판을 비교 체험하는 시민들

원본과 빽판을 비교 체험하는 시민들

그렇다면 빽판과 원본이 큰 차이가 있을까. 이번 전시에서는 턴테이블을 놓고 빽판과 원본을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 속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자녀와 함께 박물관을 찾은 정순주 씨는 “당시 빽판을 많이 찾았어요. 원본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 이렇게 들어보니 참 그때가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비교해보니 원본이 좀 더 나은 듯하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왠지 빽판이 더 애착이 가네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청계천 불법 음란물의 상징, 빨간 상자

청계천 불법 음란물의 상징, 빨간 상자

몰래 거래되는 시장과 함께 등장한 것이 불법 음란물이었다. ‘플레이보이’, ‘허슬러’ 등 각종 복제된 성인 비디오와 성인 만화들이 거래됐다. 음란물 시장이 대표 장소인 청계천의 빨간 박스들이 많았을 정도였다. 당시 세운상가 지역은 음란물 유통에 중추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여기를 지나는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비디오를 보고 가라”는 어른들이 많았을 정도로 무법천지였다. 정부가 단속을 하기도 했지만 어림없었다.

기획전시실에도 그 청계천의 빨간 상자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들의 눈길을 빼앗기 충분했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그때처럼 많은 성인물들이 있어 당시 분위기를 살리는 듯했다. 그때 기억을 회상하는 한 중년의?시민은 “당시 청계천은 성인물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어요.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니 어떻게든 구해서 친구들과 같이 보고 그랬죠.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네요”라고 전했다.

1980년대 팩 게임

1980년대 팩 게임

세운상가는 게임산업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었다. 1980년대부터 일본의 게임과 전자오락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도 전자오락에 대한 관심이 컸다.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게임은 교육을 방해하는 나쁜 것이라고 불순하게 여겼다. 그러나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게임은 불법으로 복제 및 판매됐다. 가격은 원본의 1/4 수준. 사고자했던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고 세운상가의 디지털 기술력이 발휘되면서 게임의 보급 속도가 커졌다. 이는 1990년대 지적재산권에 따른 단속이 강화될 때까지 지속됐다.

기획전시실의 한켠에는 당시 매우 인기가 높았던 일본 세이부社에서 제작한 ‘너구리’와 ‘갤러그’ 게임을 할 수 있다. 당시 학생이라면 모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유명했던 이 게임은 지금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다. 그때 맘껏 즐겼던 세대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을 선사하고 게임을 처음 본 세대는 박물관에서 즐거운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셈이었다.

김희원 씨는 “남자라면 안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죠. 박물관에서 보니 참 반갑네요.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에요”라고 말했다.

오락 게임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오락 게임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전시는 1960~198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를 중심을 성행했던 추억의 대중문화를 보여준 기획전시다. 청계천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함께 당시 앨범, 테이프, 도서 등의 빽판들, 당시 아이템들이 많았다. 한쪽 벽면이 모두 앨범으로 가득 차 있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많은 어른들에게 좋은 추억을, 어린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빨간 비디오의 천국이었던 청계천. 수많은 빽판들이 만들어졌던 이곳에서 서울의 또다른 모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청계천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며 본다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전시 안내
○ 전시 기간 : 2018.08.24.~2018.11.11.
○ 전시 장소 :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 (서울시성동구 청계천로 530)
○ 관람 시간
- 9:00~19:00 (8월~10월, 11월 평일)
?- 9:00~18:00 (11월, 주말/공휴일)
-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 비용 : 무료
○ 전화 : 02-2286-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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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유적지 ‘청계천’을 추억하다 - 문서정보
관리번호 D0000034593353 등록일 2018-10-05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김진흥 생산일 2018-10-04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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