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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도보 탐방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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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근대유산의 1번지, 정동. 1883년 미국공사관이 처음 들어선 이후 각국의 공관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수용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아관파천의 현장이자 조선왕조가 자주적 근대국가로 탈바꿈하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한 뜻깊은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근대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정동을 도보로 탐방하며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여해 보았다.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이 프로그램은 정동극장 앞에서 시작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더위가 찾아온 지난 토요일, 탐방 프로그램에는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탐방객이 유난히 많았다. 평소에는 120분 정도 소요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유독 덥고 어린이들도 많아 조금 짧은 코스로 돌겠다며 해설사분이 양해를 구했다.

탐방객이 모두 모이자 해설이 시작됐다. 정동은 1396년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조성되며 생겨났다. 그러나 신덕왕후를 못마땅하게 여긴 태종 이방원에 의해 정릉은 도성 밖으로 옮겨지고, 정동이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정릉이 성북구에 자리하고 있다.

구 신아일보사 별관

구 신아일보사 별관

정동은 조선 초기 생겨난 이후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장소가 되었다. 가장 먼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붉은 벽돌의 구 신아일보사 별관. 1930년대에 미국 싱거미싱회사 사옥으로 지어진 곳으로, 1969년 신아일보사 별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80년 5공화국의 언론 기관 통폐합 조치로 강제 통합, 폐간되면서 지금은 신아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 기술사적 가치와 언론 통폐합이라는 역사적인 흔적까지 담고 있는 곳이다.

구 러시아공사관

구 러시아공사관

정동의 제일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만나게 되는 것은 구 러시아공사관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세자와 1년간 피신해 머물렀던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치면서 공사관의 기능이 크게 축소되었고, 1949년까지 공사관으로 쓰였다. 한국전쟁 중 건물이 크게 파손되어 3층 전망탑과 일부 기초 유구, 지하 통로 등만 남아있다.

서울시 보호수 정동회화나무

서울시 보호수 정동회화나무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수령 500년이 넘는 높이 17m, 지름 5.16cm의 커다란 회화나무를 맞이하게 된다. 1976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정동회화나무는 근대유산 1번지 정동의 과거와 현재를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다. 길을 건 너 찾아간 곳은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1886년 메리 스크랜튼 부인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은 유관순 등 의식 있는 여성인재를 양성하였다.

보구여관 터

보구여관 터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여성교육기관이었던 이화박물관을 나서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으로 여성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했던 보구여관 터를 지나가게 된다. 1887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설립한 보구여관은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정동교회 전경

정동교회 전경

정동에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는 건물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정동교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개신교회로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의 거점으로서, 독립선언문이 비밀리에 등사된 곳이다.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이필주 담임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배제학당역사박물관

배제학당역사박물관

역시나 우리나라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 신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은 1885년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에 의해 세워졌다. 고종 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소설가 나도향, 시인 김소월, 한글학자 주시경, 독립운동가 지청천 등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정동 근대유산 탐방길의 마지막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마무리했다. 원래 이곳에는 1886년에 조성된 관립 육영공원이 있었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인 평리원이 들어섰고, 1910년 대한제국 말기에는 토지조사국이 들어섰다. 1928년 경성지방법원, 고등법원 등의 청사 확장 및 이전과 함께 법원 단지가 되어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은 연인은 헤어진다는 풍문을 낳기도 했다.

꽤 많이 돌아본 것 같은데도 짧은 코스로 돌아봤다고 하니 정동에는 얼마나 많은 근대유산이 남아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을 진행하는 곳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다.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화유산을 영구히 보전하며 가꾸어가는 활동을 펼치는 민간기구이다. 문화유산알기운동 중 하나로 정동 근대유산 탐방활동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진행하고 있다.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근대유산 1번지 정동을 돌아보며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정동길 근대유산 도보 탐방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참가비 : 무료
○안내해설 : 매주 토·일 13:30 (추석, 설명절 연휴, 7월~8월, 1월~3월 휴무)
○집결장소 : 정동극장 앞
○소요시간 : 120분
○안내해설 신청 및 문의 : nt_heritage@hanmail.net, 02-752-7525
○홈페이지 : 문화유산국민신탁
○문의 : 문화유산국민신탁 협력지원팀 02-752-7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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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도보 탐방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들'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김수정 생산일 2018-06-15
관리번호 D000003382262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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