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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문래동 예술촌'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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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대로 다양한 벽화를 만날 수 있는 문래동 예술촌의 철공소 골목길

발길 닿는 대로 다양한 벽화를 만날 수 있는 문래동 예술촌의 철공소 골목길

철판을 자르는 굉음이 귀청을 때리는가 하면 용접공의 마스크 앞으로 불꽃이 튄다. 거친 기계음과 쇳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서울 문래동의 철공소단지에 자리한 ‘문래동 예술촌’이다. 일상에 지칠 때 사람들은 왁자한 장터를 찾는다지만 문래동 예술촌 또한 시장 못지않은 생동감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에서 나와 몇 걸음 걷다 보면 철공소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난다. 문래동 예술촌을 알리는 안내판과 철로 만든 조형물도 보인다. 버려진 철과 낡은 연장들을 활용해 재탄생한 이 작품들은 거리 곳곳에 배치돼 명성을 날리던 옛 시절을 상기시킨다.

문래동 예술촌 거리에서 마주친 철제 작품, '깡통 로봇'의 모습

문래동 예술촌 거리에서 마주친 철제 작품, '깡통 로봇'의 모습

철로 만든 망치와 용접할 때 쓰는 철가면도 멋진 예술작품으로 거리에 나왔다. 교차로 큰길가에 깡통 로봇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만든 작품들은 볼수록 재치가 넘쳐나 쇳소리 진동하는 거리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환기시켜주고 있다. 높다랗게 쌓여 있는 철강재 단면도 이곳에선 예술적으로 비쳐질 정도다.

문래동은 일제강점기에 방직공장이 들어선 곳으로 ‘문래’라는 지명은 실을 짜는 도구인 ‘물레’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1960년대, 이 일대에 철재공장들이 생겨나면서 차츰 철공소단지로 자리 잡게 됐다. 1980~90년대 청계천의 철공소들이 많이 이주해 오면서 번성기를 이루며 한때 서울에서 가장 큰 철강공단지대로 불리기도 했다.

문래동 예술촌 거리에서 만난 커다란 망치 조형물

문래동 예술촌 거리에서 만난 커다란 망치 조형물

하지만 2000년대 초 재개발 지구로 고시돼 많은 공장이 빠져나가며 퇴락해갔다. 철공소가 떠난 빈자리를 채운 이들은 예술가들이다. 저렴한 임대료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면서 이곳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서울시의 지역 예술거점 정책으로 예술촌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전시장인 ‘문래예술공장’도 생겨났고 ‘문래창작촌’이란 이름도 얻게 됐다. 예술가들의 작업실 뿐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공방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의 볼거리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거리벽화 작업은 2008년에 시작됐다.

대형철공소가 밀집된 단지에 들어서면 담벼락보다는 주로 건물의 철문에서 벽화를 발견하게 된다. 낙서처럼 보이는 그래피티 타입의 벽화가 주류를 이룬다. 계단과 건물의 옥상도 주저 말고 한번 올라가자. 사방이 탁 트인 도심 옥상에서 벽화에 그려진 김구 선생과 가수 아이유를 대면한다는 것은 색다른 기쁨이다. 철공소들이 일하는 평일에는 철문에 그려진 벽화를 웬만해서는 보기 어려우니 철문이 닫힌, 휴일에 찾아가면 편히 볼 수 있다.

문래동 예술촌 철공소 골목길, 옥상 등에선 다양한 벽화를 접할 수 있다.

문래동 예술촌 철공소 골목길, 옥상 등에선 다양한 벽화를 접할 수 있다.

작은 철공소가 자리한 골목길에서는 더 많은 벽화와 마주칠 수 있다. 벽화가 숨어 있을만한 좁다란 골목길이 많기 때문이다. 문래동주민센터가 자리한 주변에는 지붕이 낮은 작은 철공소들이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목형, 밀링, 빠우 등 전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생소한 이름의 간판들이 빽빽하다. 단지 둘레로 높다란 고층 아파트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골목길은 직물의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데다 모양도 엇비슷해 벽화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보면 몇 번은 헤매게 된다. 그러다 좁다란 골목길에서 벽화를 발견하면 그 마저도 즐겁다. 화사한 빛깔로 채색된 벽화 앞에 서면 마치 동화 속 나라에 온 듯하다. 가족, 꽃을 든 소녀, 사슴 등 다양한 풍경을 품은 문래동 예술촌 벽화는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담벼락으로 불쑥 나온 연통과 전기계량기도 벽화는 살뜰히 품었다. 벽화를 비롯해 옛 모습을 간직한 오래된 철공소와 아담한 카페와 공방이 한 골목에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궁금해 달려 온 방문객도 종종 보인다.

문래동에는 지금도 철공소 1,000여 곳이 문래동 1~4가 사이에 모여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철재를 옮기는 육중한 소리와 쇠를 다듬는 소리로 가득하다. 쇠를 깎고 녹여 우리나라 제조업 곳곳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며 지금도 철강산업의 뿌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철판을 자르고 불꽃이 튀는 노동의 현장에서 바라본 벽화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벽화로 단장한 철공소 골목길에서 듣는 쇳소리 또한 제법 무게 있는 클래식 음악처럼 들렸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철공소 작업장에 쌓여 있는 철재 단면까지도 아름다운 작품처럼 느껴진다.

철공소 작업장에 쌓여 있는 철재 단면 모습까지도 아름다운 작품처럼 느껴진다.

미세먼지로 봄꽃들조차 한 풀 기세가 꺾인 이때쯤, 철공장과 예술공간이 공존하는 문래동 예술촌은 시간을 넉넉히 두고 둘러봄이 좋을 것 같다. 오밀조밀 사방으로 뻗어난 골목길만큼이나 벽화와 조형물도 사방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리 지도를 찾아보면 발품을 줄일 수야 있겠지만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무심코 마주치는 벽화가 훨씬 더 반갑지 않을까? 바삐 돌아가는 작업장의 역동적인 모습을 피부로 직접 느껴보면서 말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예술의 향취 어린 특색 있는 명소로 잘 유지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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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문래동 예술촌' 산책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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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8-04-19
관리번호 D0000033441321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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