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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바치는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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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31주기 헌화 행사. 헌화 장소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었다 ⓒ김진흥

박종철 열사 31주기 헌화 행사. 헌화 장소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지도에서 보기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이 말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고 박종철 열사일 것이다. 박종철 열사 사인을 쇼크사로 조작해 당시 경찰총수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때 사용한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다가 국민 분노만 더 크게 만든 셈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최근 영화 <1987>로 제작돼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오후, 많은 사람들이 1호선 남영역 근처 건물로 모여들었다. 그곳은 평범한 벽돌로 지은 경찰인권센터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청년들이 희생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박종철 31주기 추모식이 열렸고 오후에는 박종철 열사가 마지막을 보냈던 남영동 건물에서 헌화 행사가 개최됐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학생 등 시민 200여명이 모였다.

현재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을 시민이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 ⓒ김진흥

현재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을 시민이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

헌화 행사에 앞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고통스러웠던 체험을 증언했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저자 유동우 씨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많은 고문을 당했다. 당시 경찰들이 저를 빨갱이 취급하려고 온갖 애를 쓰며 고통을 주었다. 정말 무지막지한 아픔이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았다”라고 전했다.

이덕희 씨는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끔찍했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나왔지만 그곳에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말이 더 안 나왔다. 트라우마를 견디느라 매우 고생했다”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헌화 장소는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였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이었다. 건물 입구가 아닌 뒤편에 있는 문으로 건물에 들어갔다. 그 안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5층으로 올라갔다. 이것은 경찰들에 끌려 온 연행자가 얼굴이 가려진 채 5층 조사실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복도 ⓒ김진흥

옛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복도

5층 조사실에 도착한 시민들은 국화꽃을 든 채 509호로 들어갔다. 저마다 국화꽃을 놓으며 박종철 열사 넋을 기렸다. 509호는 당시 고문 받던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눈물 흘린 시민들도 보였다.

한 시민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영화에서처럼 희미한 창문 틈 사이로 고문 받는 걸 생각하니 더 가슴이 먹먹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문 받았다고 하니 끔찍함을 이루말할 수가 없다. 영화 때문에 박종철 열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런 아픈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고 박종철 열사 31주기 행사를 주관한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경기도 안산 감골주민회 청년 동아리와 박종철 열사가 다녔던 부산 세광고에 장학금을 전달해 박종철 열사 뜻을 이어가고자 했다.

현재 경창철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좌), 4층 박종철 기념관(우) ⓒ김진흥

현재 경창철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좌), 4층 박종철 기념관(우)

■ 남영동 대공분실 (현 경찰청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0~1980년대 대표적인 고문기관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다른 수사기관들처럼 지하에 있지 않고 5층에 있는 게 특징이다. 5층 조사실은 15개가 있는데 2개를 제외하고는 4.09평 공간에 책상과 의자, 침대, 욕조, 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설치된 가구들은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각 방에 있는 창문은 폭이 좁고 위아래로 긴 창문 2개만이 이중창으로 나 있어 밖을 내다보기도, 비명소리가 새어나가기도 어렵게 돼 있다. 모든 방에는 CCTV가 설치돼 있어 본관 2층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잡혀 온 연행자들은 물고문, 전기고문 등 온갖 고문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은 509호만이 물고문을 위한 욕조를 갖춘 80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나머지 방들은 몇 차례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그때의 모습이 없어진 상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 가능성이 높다. 옛 중앙정보부가 있던 남산 기슭의 건물은 고문 현장이 사라졌고 서빙고 보안사 대공분실은 그나마 조금 보존된 채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주말 개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물 4층에는 박종철 열사 죽음을 기리는 ‘박종철기념관’이 있다. 2008년에 들어선 기념관은 1980년대의 시대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이나 신문자료들과 박종철 군의 유품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 교통 : 지하철 1호선 남영역
○ 운영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 사이트 : 870114cheol-a.org/
○ 문의 : 02-3150-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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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바치는 꽃 한 송이 - 문서정보 : 원본시스템, 제공부서, 작성자(책임자), 생산일, 관리번호, 분류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김진흥 생산일 2018-01-22
관리번호 D0000032658276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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