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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거리에서 기억하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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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 열사의 신림동 하숙집 맞은편에 세워진 동판 ⓒ최은주

고 박종철 열사의 신림동 하숙집 맞은편에 세워진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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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월 13일, 박열사가 살았던 하숙집 골목에서 ‘박종철거리 선포식’이 열렸다. 녹두거리 혹은 고시촌으로 잘 알려진 관악구 신림동 대학5길은 박열사가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시국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던 곳이다.

겨울 추위에도 많은 시민들이 모여 좁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대학시절 박종철 열사가 즐겨 불렀던 ‘그날이 오면’이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87년 1월 14일 새벽 하숙집 앞에서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이것이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돼 우리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됐다.

박종철거리 선포식에 모인 시민들 ⓒ최은주

박종철거리 선포식에 모인 시민들

선포식에서는 당시 하숙집 맞은편에 세운 동판의 제막식도 함께 열렸다. 이 자리에는 친구, 지역주민, 서울대후배와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사람들이 굵은 밧줄을 힘차게 당기자 흰 천으로 가려져 있던 노란 동판 위에 박열사 얼굴이 드러났다. 백발이 돼서 찾아온 친구들과 달리 앳된 얼굴을 한 박열사는 민주주의나 숭고한 희생을 운운하기엔 너무나 선량해 보였다. 그를 기억하는 친구나 동지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담장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과 함께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동생이 3년간 머물렀던 골목에 선 고 박종철 열사 누나 박은숙 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화려해진 모습을 보니 그때 골목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종철이가 새벽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지 않았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잡혀가기 전날까지도 빗자루로 하숙집 앞마당을 쓸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염원하던 청년. 그 아름다운 청년이 살던 옛 집터, 붉은색 다세대주택이 나란히 서있는 골목에선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어왔지만 그가 바라던 민주주의는 마침내 꽃을 피웠다.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이 있던 신림동 대학5길(좌), 박종철거리 선포식에 자리한 누나 박은숙 씨(우) ⓒ최은주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이 있던 신림동 대학5길(좌), 박종철거리 선포식에 자리한 누나 박은숙 씨(우)

이 거리는 관악구 주민들이 먼저 제안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주민들은 스스로 박종철거리를 기획했을 뿐만 아니라, 관악구 마을해설사를 양성해 오는 4월부턴 박열사의 죽음과 민주화운동에 대해 해설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영화 <1987> 개봉으로 박종철 열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때 박종철거리가 생겨 그의 뜻을 기릴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사람들은 반가움을 표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박종철 열사의 숭고한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역사의 현장이자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박종철거리 벽화에 그려진 박종철 열사의 모습 ⓒ최은주

박종철거리 벽화에 그려진 박종철 열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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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최은주 생산일 2018-01-18
관리번호 D0000032639553 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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