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한다면 ‘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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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의 설문을 거쳐 뽑힌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100선’이 상영되고 있다. ⓒ박분

한국영상자료원의 설문을 거쳐 뽑힌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100선’이 상영되고 있다.

영화 매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부터 시대별 한국영화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을 방문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 1층에 위치한 이곳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때마침 이곳에서는 지난 5월 말부터 <한국영화와 대중가요, 그 100년의 만남>이라는 주제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영화 대본과 촬영 장비, 하단의 동그란 것은 필름 통이다. ⓒ박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영화 대본과 촬영 장비, 하단의 동그란 것은 필름 통이다.

먼저 한국영화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축약하여 보여주는 상설전시관에 들어갔다. 정면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1900년대 초에 제작된 활동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차가 달리는 서울 거리의 풍경, 도포에 갓을 쓴 어른과 포대기를 둘러 어린애를 업은 아낙의 모습 등이다. 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 활동사진은 그 시대에 매우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길거리와 관공서, 사람들의 옷차림 등 당시의 시대 상황이 영상물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900년대 초기 영상물은 이 같은 ‘활동사진’이었다.

`아리랑` 스틸사진과 촬영현장 사진들은 그 시절 나운규의 영화 인생을 보여준다. ⓒ박분

`아리랑` 스틸사진과 촬영현장 사진들은 그 시절 나운규의 영화 인생을 보여준다.

수탈과 억압이 자행되던 일제 식민지 시기에도 시들지 않던 영화인들의 활약상은 당시 제작된 영상물과 스틸사진(영화나 드라마의 장면 사진) 등의 기록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는 최초의 조선영화 <의리의 구토>를 비롯해 <월하의 맹세> <춘향전> <장화홍련전> 등이 발표된 무성영화의 전성시대였다.

그 중 나운규의 <아리랑>이 더욱 돋보이는데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중들의 혼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돼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킨 영화 <아리랑>의 스틸사진과 제작진들이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들은 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의 삶을 보여준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던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영화로 담아낸 그의 예술성과 저항정신은 알려진 대로 대단했다. 당시 무성영화는 변사가 극 중 대사를 혼자서 주고받고 해설까지 겸했다고 하는데, 나운규는 감독부터 주연, 변사까지 혼자서 다 해냈다. 암울한 시대에 큰 위안이 됐던 걸작 <아리랑>은 영화에 대한 그의 무한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전후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 `자유부인`의 영상물과 소품들이 인상적이다. ⓒ박분

전후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 `자유부인`의 영상물과 소품들이 인상적이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빈곤하고 무질서했지만 한국영화의 성장은 멈추질 않았다. 1956년에 개봉돼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영화 <자유부인>이 그 증거다. 남녀가 끌어안고 홀을 누비며 춤을 추는 흑백의 영상물은 굳이 표제를 읽지 않더라도 한눈에 영화 <자유부인>임을 알아챌 수 있다. 전후의 세태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영화는 사치와 향락, 성적? 도덕적 타락이 범람하는 서울을 무대로 삼았다. 전쟁 뒤의 폐허 속에서 미군의 주둔으로 나타난 급속한 소비문화 확산은 사회적 혼란기를 맞은 시대적 상황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영상물 아래에는 당시 소품인 핸드백과 하이힐이 전시돼 있다.

신군부가 등장한 1970년대는 성(性)에 대한 검열 완화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이 다수 제작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패기 넘치는 젊은 감독들이 등장해 <우묵배미의 사랑>, <하얀전쟁>, <남부군> 등의 영화가 제작됐다. 박광수, 정지영, 장선우, 이명세 등 이 시기의 감독들은 훗날 ‘코리안 뉴웨이브(새로운 물결)’라 명명되기도 했다. 1990년대 멀티플렉스(거대 영화관)의 등장은 영화산업을 더욱 키워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게 했다.

이후 한국영화가 해외에 진출하 성과도 거두게 됐으며 2000년대 들어 한류의 시대를 맞게 됐다. 상상을 뛰어 넘는 영상문화의 급속한 발달 속에서 한국영화의 역사는 어떻게 변화할지 미지수이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옥자>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부지런히 필름을 감아 영화를 재생시켜주던 35밀리미터 필름 영사기 ⓒ박분

부지런히 필름을 감아 영화를 재생시켜주던 35밀리미터 필름 영사기

촬영 장비와 영화 대본, 감독들의 소장품 등 한국영화박물관의 전시품들은 대부분 영화를 아끼는 이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다. 전시품마다 기증자의 이름이 표기돼 있다. 어른 몸체만 한 35밀리 영사기는 대구에 소재한 코리아 극장에서 기증했다. 극장 뒤편 어둠 속에서 ‘촤르르’ 필름 감기는 소리를 내며 환하게 불을 밝혔을 이 영사기는 전시품 중 가장 덩치가 커 외양만으로도 큰 존재감을 나타낸다. 디지털 시대에 영사기를 돌리는 영화관은 이제 찾기 어려워졌지만, 필름이 끊기면 아우성을 쳤던 그 시절의 향수를 어찌 다 잊을 수 있을까?

스태프들에게 제공됐던 만원사례 봉투와 영화 대본 ⓒ박분

스태프들에게 제공됐던 만원사례 봉투와 영화 대본

재미있는 사연이 담긴 전시품도 있다. 주황색 글씨로 ‘만원사례(滿員謝禮)’라고 적힌 봉투는 한때 극장가에서 종종 돌아다니던 봉투였다고 한다. 영화관에 관객들이 꽉 차 표가 매진된 날은 고생한 영화 스태프에게 감독이나 극장 주인이 감사의 표시로 봉투에 사례금을 넣어 함께 자축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만원사례 봉투 옆에는 고래사냥 대본이 놓여있다. 1984년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한 고래사냥이 매진을 기록한 날, 만원 사례금을 나누며 푸근한 정을 나눴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덩달아 즐거워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100선’도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내의 대표적인 영화사연구자, 비평가 등 영화인들의 설문을 거쳐 영화를 선정했다.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2012년까지 개봉한 장편영화 중 대중 의식을 잘 반영하였거나 사회의 독특한 맥락에서 사적 가치와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 등이 선정 기준이었다. 100편의 주옥같은 영화가 퍼즐 조각처럼 한데 모여 파노라마를 이뤘다. 무명옷의 조선악극단 배우부터 현재의 스타들까지 총출동한 대형 화면에서는 금방이라도 불꽃 튀는 연기 열전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빛날 영화들을 하나씩 새기다 보면 추억과 감동이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제작공방실에서 체험에 나선 시민들 ⓒ박분

애니메이션 제작공방실에서 체험에 나선 시민들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직접 그려보면서 애니메이션 원리를 이해하는 체험도 가능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대형 원기둥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언뜻 보면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원기둥 모양의 이 통은 조이트로프(zoetrope)라는 애니메이션 기구이다.

기획전 <한국영화와 대중가요 그 100년의 만남>을 열고 있는 기획전시관도 찾아갔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영화와 가요가 100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공존하며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로 12월 17일까지 이어진다.

기획전시실 입구에는 대중가요 연구자와 애호가들이 선정한 ‘한국영화 주제가 100선’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영화와 대중가요의 첫 만남은 영화 <아리랑>(1926)을 통해 시작됐으며 영화의 주제가인 ‘아리랑’이 대중 가요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크다. 최초의 영화 주제가이자 최초의 금지곡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의 성공적 흥행은 주제가를 통해 전국에 저항정신과 민족혼을 전파했다. ‘아리랑’의 음반 압수와 노래가사 홍보 전단지 압수를 전하는 동아일보와 매일신보의 기사 스크랩이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음악감상실에는 청취를 위한 CD플레이어가 설치돼 있다. ⓒ박분

음악감상실에는 청취를 위한 CD플레이어가 설치돼 있다.

이번 기획전시의 특징은 전시물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전의 핵심이 되는 영화주제곡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주제가 100선’을 관람객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실 내에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청음기(CD플레이어) 5대가 설치돼 있어 듣고 싶은 영화주제가를 골라 들을 수 있다. 한국영화 속에 등장한 다채로운 대중음악을 한자리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암담한 시대에 큰 위안이 됐던 ‘아리랑’을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 영화주제가 100선’ 중 ‘아리랑’은 첫 번째 주제가이기도 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가요 ‘아리랑’은 그 시절 유행하던 고음(소프라노 톤)의 목소리에 약간 빠른 템포의 노래로 여운이 느껴졌다. 영화 <아리랑>은 필름이 없어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주제가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전시된 음반 재킷 복제품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박분

전시된 음반 재킷 복제품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영화주제가를 담은 음반 재킷도 전시돼 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빨간 마후라’, ‘동백 아가씨’ 등 오래된 음반 재킷에는 배우나 가수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있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LP(음반) 재킷 레플리카(복제품)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음악을 전달하는 매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노래를 담은 그릇, SP와 LP’라는 주제 아래 각종 SP, LP도 전시되어 있다. 축음기 음반으로 불리는 SP 음반과 축음기, 그리고 전축이라고 부르는 LP까지 투박해 보이지만 아날로그적이고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매체들이 전시돼 있다.

축음기와 음반에 대한 큐레이터의 해설을 경청하는 시민들 ⓒ박분

축음기와 음반에 대한 큐레이터의 해설을 경청하는 시민들

특별한 즐길 거리가 또 하나 있다. 대중음악연구자인 이준희 씨의 해설로 20여 분 동안 진행하는 축음기와 전축 시연과 청음 시간이다. 이날 관람객들이 감상한 음악은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삽입곡으로도 알려진 ‘라 팔로마’와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두 곡이었다. 고풍스러운 축음기로 오리지널 음반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한편, 영상자료원 지하 1층에서는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시네마테크 KOFA(Korean Federation of Film Archives)에서 보고 싶은 영화의 시간을 확인하고, 매표소에서 무료입장권을 발권해서 들어가면 된다.

■ 한국영화박물관 안내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한국영상자료원 1층
○ 이용시간 : 화~금요일 오전10시~오후7시(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오후9시까지), 주말·공휴일 오전10시~오후6시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신정), 설 연휴, 추석 연휴
○ 정기해설 : 화~금요일 오후3시, 토~일요일 오전11시, 오후3시
○ 홈페이지 : www.koreafilm.or.kr/museum/main
○ 문의 : 02-3153-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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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번호 D0000030505580 등록일 2017-06-23
분류 기타
원본시스템 내손안에서울 제공부서 뉴미디어담당관
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박분 생산일 2017-06-22
라이선스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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