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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외침 “돈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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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해결을 요구하는 대학생 행진에 참여한 청년들 ⓒnews1

청년실업 해결을 요구하는 대학생 행진에 참여한 청년들

돈은 곧 시간이었다.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자격증을 따야 한다, 대외활동을 해야 한다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썼고 하루는, 한 주는, 한 달은 아르바이트로 채워졌다. 나의 내년은 올해와 같이 아르바이트로 채워질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제 고학년이니 토익 학원에 다녀야 한다 스터디를 해야 한다고들 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아니 돈이 없었다.

대학교를 다니며 용돈을 벌어서 썼다. 과소비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 있을 때면 식비 세 끼와 모든 비용을 포함해서 하루에 1만 원을 넘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돈이면 식당에서는 두 끼를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해도 한 달에 30만 원인데, 교통비로 한 달에 10만 원을 썼다. 어느새 40만 원이었다. 나는 술자리에 가지 않았고, 옷을 사거나 나를 위한 쇼핑을 하지 않았다. 살아남았을 뿐이다.

취업준비생의 월 가게부는ⓒ연합뉴스

40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시급 6,500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월에 약 60시간을 일해야 한다. 1주에 15시간을 일해야 한다. 나는 월·화·수요일이나 화·수·목요일에 모든 수업을 몰아서 듣고(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3일에 몰아서 수업을 듣는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단기 알바를 하고 주말에는 주말알바를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알바를 계속 구할 수 있었다. 주말에는 상대적으로 시급이 높은 학원에서 일했기에 주말 하루만 일할 수 있었다. 목·금요일에도 끊임없이 단기 알바를 하거나 날짜가 맞는 알바를 할 수 있었다.

또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등록금을 내가 모으지는 않았다. 등록금은 어떻게든 부모님이 내주셨거나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아(국가는 나에게 전액장학을 받아도 되는 집안형편임을 인정해주었다. 고맙게도 말이다)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방학 때 자취방을 구할 돈과 생활비를 구하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시간이 없었다. 돈이 없었다. 학기 중에 3일, 4일을 일을 하며 학기를 소화하면 몸에서 병이 난다. 어느 해 겨울 나는 턱이 너무 아파 음식을 씹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 병원을 가지 못했다. 2주일이 지나서 찾은 치과에서는 턱 관절염이라고 했다. 나보고 잠을 적게 자지 않았느냐,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욕심을 부린 적이 없다. 미디어에서 쉽게 떠드는 것처럼 매일 같이 술을 마시거나 흥청망청 살지 않았다. 쇼핑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편의점의 1+1상품으로 배를 채웠다. 하지만 바빴다. 시간이 없어서 추가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학교에 있을 때는 밀려드는 과제하기에도 벅찼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12시에 자취방에 돌아올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논 적이 없었으나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추가로 공부를 할 여유는 없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한 청년ⓒ뉴시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한 청년

내가 얼마나 가난했는가 혹은 힘들었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운이 좋았던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가 더 가난하다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 시급의 알바를 구할 수 없는 사람, 등록금까지 내야 하는 사람의 삶을 상상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살아온 이들이 취업시장에 내몰렸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에게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 서울시 전체 예산 30조에서 0.1%도 되지 않는 150억 원을 주는 것이, 말처럼 쉽게 흥청망청 쓰이는 용돈도 아니라 자기계발에 쓰이는 비용을 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소득을 확인하는 등 꼭 필요한 이들에게 주겠다는 것이 정말로 ‘돈낭비’이거나 ‘포퓰리즘’인지 생각하기를 바랄 뿐이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밀려나는 이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랄 뿐이다.

토익 공부, 자격증, 어학연수, 공모전, 사회가 요구하는 많은 것들은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시간이 없으면 할 수 없다. 굳이 그런 것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일도, 그 프로젝트를 상상하는 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전국 수많은 ‘나’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시간을 쓴다. 방학에는 등록금을 벌어야 하고 학기 중에는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모든 건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고 시간을 시간으로 쓰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 시간보다 우위에 있는 건 돈이다.

청년수당 논의가 나올 때마다 ‘포퓰리즘이다’ ‘청년들에게 무엇이 부족하기에’라는 이야기들이 뒤따른다. 내가 말하고 싶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돈이 부족해서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니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족하다고. 돈이 부족한 사람은 계속 시간이 부족하기에 계속 뒤처지고, 계속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된다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게 되어 버린다고.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 시간을 주고 따라갈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어떻게 포퓰리즘일 수 있냐고. 운이 좋았던 나의 삶조차 이럴진대 그렇지 않은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그 돈이 낭비일 수 있냐고.

청년수당을 받은 청년들이 무엇을 할까. 알바를 줄일 수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지만 현재의 몸을 갉아먹고 미래를 좀먹는 시간도둑을 줄일 수 있다. 그만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등록금과 생활비를 자신이 담당하지 않아도 되었던 사람들만이 가능했던 공부를 할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찾아나갈 수 있다. 청년수당은 돈을 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주는 정책이다.

나의 생활은 달라진 것이 없다. 계속 이어진다. 만날 여유가 없어서 멀어진 친구들, 푹 자본적 없는 나날, 학교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축내고 있는 몸. ‘때 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것들을 마음 속에만 담고 있는 자신.

어느 날인가 나는 “내년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게 슬프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의 이 고통들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스스로에게 하는 선고는 충분히 비극적이었다. 청년수당은 희망을 줄 것이다. 더 나아진 내년을 꿈꾸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청년수당은 그런 ‘희망’이다. ‘운이 좋지 않았던’ 청년들에게는 더욱 절박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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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책임자) 시민기자 고함20 생산일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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